이 사이트에서 성인들의 생애를 읽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보편 로마 전례력을 따라 한 해 동안 날마다 그날의 성인이나 축일에 관한 글을 읽는 것입니다. 둘째는 알파벳순 색인이나 검색창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연대순으로 읽는 것입니다. 한 세기씩 차례로 살펴보면 교회사의 각 시대를 이해하고, 성령께서 모든 시대와 문화 안에서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전례에서 기념하는 성인과 축일을 사건이 일어난 날짜, 성인이 선종한 날짜 또는 축일이 보편 로마 전례력에 추가된 날짜에 따라 연대순으로 정리한 목록입니다. 교회 역사를 공부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복음 선포 사명이 어떻게 펼쳐져 왔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께는 아래의 드롭다운 메뉴 사용을 권합니다.
성인과 축일의 연대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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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to Chronological Order
아래는 보편 로마 전례력에 수록된 전례주년의 성인과 축일에 미국 전례력의 추가 항목을 더한 목록입니다. 연대순 목록은 사건이 일어난 날짜, 성인이 선종한 날짜 또는 축일이 보편 로마 전례력에 추가된 날짜를 기준으로 합니다. 교회 역사를 공부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복음 선포 사명이 어떻게 펼쳐져 왔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께는 연대순으로 살펴보는 방법을 권합니다.
먼저 이 부록에 나오는 사건들의 연대 표기에 관하여 한 가지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1582년 이전에 교회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사용했습니다. 이 달력은 교회가 해마다 부활 대축일의 날짜를 정확히 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에 중요했습니다. 율리우스력의 문제는 실제 태양년이 365.25일보다 조금 짧아서 128년마다 하루의 오차가 생긴다는 점이었습니다. 1582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은 천문학자와 수학자들의 의견을 신중히 들은 뒤 교회의 달력을 개정하고 그레고리오력의 사용을 공포했습니다. 오늘날 이 달력은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1582년에 그레고리오력을 시행하면서, 율리우스력 때문에 지난 여러 세기 동안 누적된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그해 10월 4일과 10월 15일 사이의 열흘을 생략했습니다. 그레고리오력에 관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그레고리오력은 서기 1년부터 시작하므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서기 1년으로 정합니다. 서기 0년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달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두 살이 되셨을 때는 서기 3년이었습니다. 둘째, 그레고리오 교황과 자문가들은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해를 계산할 때 6세기 수도자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의 계산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이 부실했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학자는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잘못 계산했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레고리오력으로 기원전 4–6년 사이에 태어나셨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이를 밝혀 두는 까닭은, 뒤이어 나오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사건들의 연대를 실제 연도가 아니라 이른바 ‘상징적’ 연도에 따라 표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연도를 따른다면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원전 4–6년으로 표기해야 하므로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피하고자 이 부록의 연대 표기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상징적인 서기 1년으로 삼고, 그 전후의 모든 사건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First Century BC
교회 역사를 연대순으로 묵상하는 여정은 기원전 15년 무렵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일을 묵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셨을 때 약 열다섯 살이셨다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교회의 탄생은 보통 오순절에 성령께서 내려오신 사건과 연결되지만, 교회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최초의 직접적인 사건은 새로운 하와이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일이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원전 1세기에는 이어서 마리아의 탄생과 성전 봉헌, 주님 탄생 예고의 순간에 이루어진 하느님 아드님의 강생, 마리아께서 성 요한 세례자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일, 그리고 요한의 탄생이 있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대축일 (기원전 15년경)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축일 (기원전 15년경)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기념일 (기원전 12년경)
First Century
1세기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기입니다.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 태어나셨고, 그분의 어머니께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으며, 성가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1세기 초반을 살펴보며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으로 살아가신 생애를 이루는 모든 사건을 묵상합니다. 그분의 탄생과 공생활, 수난과 부활, 승천과 성령 강림을 묵상합니다. 또한 성전 봉헌과 동방 박사들의 방문, 세례자 요한 등 예수님의 지상 생활에 함께한 인물들과 사건들도 묵상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상징적인 연대 체계로 33년 무렵에 일어난 성령 강림 이후, 교회가 탄생하고 사도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도 시대는 마지막 사도인 성 요한 복음사가가 선종한 101년 무렵에 끝났습니다. 사도 시대의 역사는 사도행전과 여러 초기 문헌 및 전승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유다를 대신할 사도로 성 마티아를 뽑은 일, 성 스테파노의 순교, 그리고 그 공동체가 로마 제국 전역과 그 너머로 흩어져 간 과정을 자세히 전합니다. 성 바오로의 회개 이후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선교 활동이 자세히 서술되며, 신약 성경의 다른 서간들은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로마, 코린토, 에페소에 새로 세워진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겪은 어려움과 받은 축복을 조명합니다. 그 밖의 여러 사도들의 활동은 주로 전승과 후대에 쓰인 전기들을 통해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전기들의 진위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 1세기를 살펴보며 우리는 성모님의 승천과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신 일을 비롯하여 그분 생애의 중요한 사건들을 묵상합니다. 아울러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그리고 사도들 가운데 처음으로 순교한 제베대오의 아들 성 야고보 등 예수님과 가까이 지낸 이들의 삶과 죽음도 묵상합니다.
다른 모든 사도들도 이 1세기에 사도직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성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했습니다. 64년 무렵, 그리스도의 첫 대리자인 성 베드로는 로마에 머물고 있었는데, 당시 로마 황제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최초의 조직적인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모두 이 박해 때 순교했으며, 이들과 함께 순교한 많은 이들은 ‘로마 교회의 첫 순교자들’이라는 이름으로 기념됩니다.
1세기 말에 이르러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의 노력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시리아, 튀르키예, 북아프리카, 그리스, 아르메니아, 이라크, 키프로스, 인도, 레바논에 해당하는 여러 지역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이 1세기에는 신학적 논쟁이 일어났으며, 유다교 율법 준수 주장자들과 영지주의자들로 불리는 이들의 가르침을 비롯한 최초의 이단들에 대처하게 되었습니다. 유다교 율법 준수 주장자들은 이민족 출신 개종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려면 할례와 같은 관습을 포함하여 유다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과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았습니다. 영지주의는 구원을 위한 비밀 지식인 영지를 강조하고, 악한 물질세계와 선한 영적 세계를 구분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제시한 초기 이단이었습니다. 다음 세기에 순교하게 되는 성 이레네오는 이러한 믿음을 반박하는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1세기 말엽에는 로마 보편 전례력에 실린 다른 성인들도 순교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평신도들과, 주교로서 사도들의 뒤를 이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로는 성 아폴리나리스, 성 티모테오, 성 티토, 성 네레오, 성 아킬레오, 그리고 성 베드로의 네 번째 후계자인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이 있습니다.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은 대표적인 세 사도 교부 가운데 한 분으로, 중요한 서간 두 편을 남겼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대축일
1월 3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명 선택 기념일(서기 1년)
7월 26일: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기원전 1세기 말–서기 1세기 초)
8월 29일: 순교자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30년 또는 33년경)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서기 33년)
12월 26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1세기 초–35년경)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축일 (1세기, 선종 연대 미상)
7월 29일: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기념일 (1세기, 선종 연대 미상)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축일 (1세기, 선종 연대 미상)
10월 28일: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축일 (1세기, 선종 연대 미상)
8월 15일: 성모 승천—대축일 (1세기, 연대 미상)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축일 (1세기, 선종 연대 미상)
7월 25일: 성 야고보(제베대오의 아들) 사도—축일 (1세기–약 44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축일 (약 5/10년–약 60/80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기념일 (1세기 초–약 61년)
5월 3일: 성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사도(및 성 필립보 사도)—축일 (기원전 1세기–약 62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대축일 (약 1년–약 64년에 선종)
6월 30일: 로마 교회의 첫 순교자들—선택 기념일 (약 64년 순교)
4월 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축일 (약 12년–약 68년)
7월 20일: 성 아폴리나리스 주교 순교자—선택 기념일 (1세기–약 79년)
5월 3일: 성 필립보 사도(및 성 야고보 사도)—축일 (약 4년–약 80년)
10월 18일: 성 루카 복음사가—축일 (1세기, 약 84세에 선종)
1월 26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기념일 (성 티모테오: 서기 17년–97년; 성 티토: 1세기–서기 96년)
Second Century
101년 무렵 성 요한 사도가 선종하면서, 교회는 사도들을 직접 알고 그들의 가르침과 사목 활동을 통해 양성된 지도자들인 사도 교부들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성 요한의 제자 가운데 두 사람이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와 성 폴리카르포였습니다. 두 분 모두 주교였으며, 주교들의 지도 아래 초기 교회가 어떻게 발전하고 형성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서간들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 보낸 이 서간들은 사목적 지침을 제시하고 일치를 권고했으며, 교회 운영에 관한 지침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새롭게 나타나는 이단들을 다루었습니다.
새롭게 나타난 이단 가운데 하나는 몬타누스주의로,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성령과의 신비 체험에 달려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마르치온주의는 구약 성경을 거부하고, 히브리 성경의 하느님을 신약 성경의 하느님과 구별되는 열등한 신으로 묘사한 이단이었습니다. 몬타누스주의는 성령께서 특정 개인들에게 주신 새로운 예언적 계시가 교회 교계 제도와 성경의 권위를 넘어선다고 주장했습니다. 리옹의 주교이자 성 폴리카르포의 제자인 성 이레네오는 정통 신앙을 수호한 인물로, 저서 이단 반박에서 영지주의 이단을 다루고 마르치온주의도 언급했습니다.
이 세기에는 훗날 신약 성경의 정경이 될 사도들의 저술들이 수집되고 봉독되며 공경받기 시작했습니다. 신학도 더욱 발전했으며, 성 유스티노 순교자와 같은 호교론자들은 신앙을 더욱 명확히 이해하도록 돕고 로마 제국의 관리들 앞에서 그 신앙을 옹호했습니다. 성 유스티노는 미사 거행에 관한 가장 초기의 기록 가운데 하나도 남겼습니다. 또한 성 유스티노는 그리스도의 본성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같은 계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지적 토대로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기에도 선교 활동은 계속되었으며, 복음은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스페인, 발칸반도,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지역과, 오늘날의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에티오피아 같은 북아프리카 국가들에까지 전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2세기에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같은 로마 황제들의 통치 아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국지적이고 산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 황제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신들을 공경하기를 거부하지 않는 한 그들을 용인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미신으로 여겼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통치 아래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박해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 세기의 그리스도인 박해는 아직 제국 전역에 걸친 조직적인 형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며, 그러한 박해는 이후 두 세기에 걸쳐 나타나게 됩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2월 27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축일 (1세기 초–약 101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기념일 (1세기 초에서 중엽 사이–약 107년)
Third Century
3세기에 교회는 크게 성장하고 교리가 발전하는 한편, 더욱 거센 박해를 겪었습니다.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교리는 계속 발전하여, 4세기 공의회들이 이를 결정적으로 명확히 밝히는 데 토대가 되었습니다.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는 교회 일치의 중요성에 관하여 저술하였고, 로마의 성 히폴리토는 이단을 반박하는 글과 전례를 비롯한 교회의 체계에 관한 글을 남겼습니다.
교회의 전례 관행은 계속 발전하였으며, 주교들 아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조직도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리스도교 미술과 건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카타콤바는 그곳에 묻힌 순교자들 때문에 점점 더 공경받게 되었습니다.
3세기 전반에도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인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성 이레네오는 3세기 초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순교하였으며, 로마 전문(감사 기도 제1양식)에 나오는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도 같은 황제에 의해 순교하였습니다. 두 성녀는 북아프리카의 도시 카르타고(오늘날의 튀니지)에서 순교하였습니다. 페르페투아는 귀족 여성이었고 펠리치타는 그의 하녀였습니다. 두 사람은 개종을 금지한 황제의 칙령을 어기고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개종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뿐 아니라, 로마 전문에 함께 나오는 두 동정녀 체칠리아와 아가타도 순교하였습니다. 이 세기에는 갈리스토 1세, 폰시아노, 파비아노, 코르넬리오, 식스토 2세 등 다섯 교황이 순교하였습니다.
250년, 로마의 데키우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모든 사람이 로마의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도록 요구하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재산 몰수와 고문, 죽음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뒤 로마 황제가 된 발레리아누스도 이러한 정책을 이어 갔으며, 특히 성직자들과 그들의 교회 재산을 겨냥하였습니다. 3세기 후반의 가장 잘 알려진 순교자들로는 성 라우렌시오와 성 세바스티아노, 쌍둥이 형제인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생겨난 또 다른 이단은 노바시아노주의였습니다. 제국 전역의 박해 때문에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구하려고 신앙을 저버렸습니다. 이들은 ‘배교자’라고 불렸습니다. 로마의 사제 노바시아노는 신앙을 저버린 사람들을 교회와의 친교 안으로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폰시아노 교황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성 치프리아노는 그들이 고백과 참회 후에 다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분명히 주장하였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기념일(2세기 말 또는 3세기 초)
10월 9일: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선택 기념일(3세기)
6월 28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기념일(약 135년–약 202년)
3월 7일: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 순교자—기념일(203년 선종)
10월 14일: 성 갈리스토 1세 교황 순교자—선택 기념일(2세기 말–약 223년)
8월 13일: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선택 기념일(출생 연도 미상–약 235년)
1월 20일: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선택 기념일(250년 선종)
2월 5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기념일(약 231년–약 251년)
9월 16일: 성 코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기념일(성 코르넬리오: 253년 선종; 성 치프리아노: 약 200년–258년)
8월 7일: 성 식스토 2세 교황 순교자와 동료 순교자들—선택 기념일(출생 연도 미상–약 258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축일(약 225년–약 258년)
Fourth Century
4세기에 교회는 ‘대박해’로 알려진, 제국 전역에 걸친 마지막 혹독한 박해를 겪은 뒤 로마 제국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을 저버리고 로마의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라고 요구하는 일련의 칙령을 내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하려고 이에 따랐지만, 수많은 다른 이들은 신앙을 굳게 지키며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 순교자들 가운데 로마 보편 전례력에 올라 있는 이들로는 성 제오르지오, 성 야누아리오, 성 마르첼리노, 성 베드로, 시라쿠사의 성녀 루치아, 성 판크라시오, 성녀 아녜스, 성 빈첸시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두 정제와 두 부제가 다스리는 사두 정치 체제로 통치되고 있었습니다. 305년, 정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공동 황제 막시미아누스는 각자의 부제가 자신들을 계승하도록 하려는 뜻으로 제위에서 물러났습니다. 당시 서방의 부제였던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는 정제가 되었지만, 306년에 그가 죽자 그의 군대는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정제로 추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칭호가 제국 전역에서 곧바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전임 서방 정제 막시미아누스의 아들 막센티우스가 로마에서 스스로 정제임을 선언하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고, 이는 312년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승리하면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전투에 앞서 콘스탄티누스는 ‘이 표징으로 그대는 승리하리라.’라는 문구와 함께 십자가가 나타나는 환시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병사들에게 방패에 십자가를 그리게 하였고 전투에서 승리하여 서방 정제로서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승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 덕분이라고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방 황제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칙령은 로마 제국 전역에서 종교적 관용을 허용하였으며, 가톨릭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밀라노 칙령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에 상당한 지원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로마와 성지의 주요 성당들을 건립하도록 부동산과 자금을 기증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라테라노 대성전, 바티칸 언덕의 성 베드로 대성전, 예루살렘의 성 십자가 대성전,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갈바리아산과 그리스도의 무덤을 덮는 성묘 성당을 세웠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성당들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순례지이자 예배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4세기에는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비롯된 이단인 아리우스주의도 대두되었습니다. 아리우스주의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그분께서 성부께 종속되며 성부와 함께 영원히 계신 분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성 아타나시오, 성 대 바실리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와 같은 뛰어난 신학자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성 실베스테르 1세 교황의 지지 아래 이들이 일치된 신학적 입장을 펼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에 최초의 세계(보편)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의회에서 니케아 신경이 작성되었고 아리우스주의가 단죄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381년에는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열려 아리우스주의를 다시 다루고 단죄했으며, 니케아 신경을 확장하였습니다.
324년, 콘스탄티누스는 동서 로마 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새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 시기에 교회는 로마뿐 아니라 제국 전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성 안토니오께서 수도 생활의 발전에 토대를 놓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은수자가 되어 동굴에 살면서 기도와 고독, 보속의 삶을 사셨습니다. 생애 말년에는 당신을 본받고자 하는 다른 은수자들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성인의 영향력은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특히 유배 중이던 알렉산드리아의 위대한 주교 성 아타나시오께서 성 안토니오를 알게 되시고 그분의 생애와 성소에 관한 책을 쓰신 일이 여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같은 세기 후반에는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께서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분으로 두각을 나타내셨습니다. 성인의 저술은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교 신학의 토대가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통일된 동서 로마 제국을 다스린 마지막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5년에 세상을 떠나자, 제국은 그의 아들들에게 분할되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의 죽음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동방(비잔틴) 교회와 서방(라틴) 교회는 문화적·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기념 (14세기에 보편 로마 전례력에 추가됨)
4월 23일: 성 제오르지오 순교자—선택 기념일 (303년경 선종)
9월 19일: 성 야누아리오 주교 순교자—선택 기념일 (304년경 선종)
6월 2일: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 순교자—선택 기념일 (3세기 중엽–304년경)
12월 13일: 시라쿠사의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기념일 (283년경–304년경)
5월 12일: 성 판크라시오 순교자—선택 기념일 (289년경–304년경)
1월 21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기념일 (291년경–304년경)
1월 22일: 성 빈첸시오 부제 순교자—선택 기념일 (3세기 후반–304년경)
11월 25일: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순교자—선택 기념일 (287년경–305년경)
2월 3일: 성 블라시오 주교 순교자—선택 기념일 (316년경 선종)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 (324년 봉헌)
11월 18일: 성 베드로 대성전과 성 바오로 대성전 봉헌—선택 기념일 (325년경 봉헌)
12월 31일: 성 실베스테르 1세 교황 (3세기 후반경–335년)
12월 6일: 성 니콜라오 주교—선택 기념일 (270년경–346년경)
8월 5일: 성모 대성전 봉헌(눈의 성모)—선택 기념일 (352년경)
1월 17일: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 아빠스—기념일 (251–356년)
1월 13일: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 주교 학자—선택 기념일 (315년경–367년)
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기념일 (296년경–373년)
6월 9일: 성 에프렘 부제 학자—선택 기념일 (306년경–373년)
8월 2일: 베르첼리의 성 에우세비오 주교—선택 기념일 (283년경 또는 4세기 초–371년)
12월 11일: 성 다마소 1세 교황—선택 기념일 (305년경–384년)
3월 18일: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선택 기념일 (315년경–387년경)
8월 27일: 성녀 모니카—기념일 (332년경–387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기념일 (성 바실리오: 329–379년; 성 그레고리오: 329년경–389년)
Fifth Century
5세기에 교회는 신학의 괄목할 만한 발전, 선교 활동의 성장, 수도 생활의 한층 깊어진 발전, 정치·문화적 변화,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겪었습니다. 4세기 말에 회개한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시기에 자신의 사상을 정립한 주요 저서인 『고백록』과 『신국론』을 집필하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 시기는 다른 여러 교회 학자들의 신학적 통찰로도 풍요로워졌습니다. 그 가운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성 예로니모의 영향력은 4세기 말에 시작되어 5세기 내내 이어졌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성 대 레오 교황도 5세기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특히 그리스도의 본성과 은총에 관한 정통 가르침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신학자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여러 이단에 대응했습니다. 여기에는 구원에 은총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한 펠라지우스주의와, 그리스도 안에 신적 위격과 인간 위격이라는 두 위격이 있다고 주장한 네스토리우스주의가 포함되었습니다. 이 교회 학자들의 도움으로,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대응하고자 소집된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로 선포했으며, 펠라지우스주의에 대응하고자 카르타고에서 공의회들이 소집되었습니다. 451년에는 세계 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가 단성설을 다루었습니다. 단성설은 예수님께서 하나의 위격 안에 결합된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신적 본성만을 지니셨다고 주장한 이단이었습니다.
410년에는 서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했고, 476년에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습니다. 이는 서방과 동방의 교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방에서 교황직은 안정을 이루는 힘이 되었으며, 영적 권위와 더불어 세속의 일에서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도 생활은 더욱 발전했고, 수도원은 거룩한 교리를 보존하는 배움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동방에서는 교회와 국가가 더욱 긴밀히 얽히게 되었고, 로마와 교황직에서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발전했는데, 이는 훗날 분열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시대의 가장 널리 알려진 성인 가운데 한 분은 성 파트리치오입니다. 성인은 로마 제국의 브리타니아에서 태어났으나, 십 대에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붙잡혀 아일랜드에서 노예로 팔렸습니다. 탈출한 뒤, 파트리치오는 선교사로서 아일랜드로 돌아가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마친 뒤 사제로, 이어 주교로 서품되었으며, 아일랜드로 돌아가 그 땅의 위대한 복음 선포자가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5세기에 처음 거행)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약 347년–407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약 340년대–420년)
8월 28일: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354년–430년)
6월 22일: 놀라의 성 파울리노 주교 선택 기념일(약 354년–431년)
6월 27일: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 선택 기념일(약 376년–444년)
7월 30일: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 학자 선택 기념일(약 380년 또는 406년–약 450년)
Sixth Century
로마 보편 전례력에 올라 있는 성인 가운데 6세기에 선종한 분은 세 분뿐이지만, 이 세기 말에는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다른 성인들도 등장했습니다. 6세기 전반에 등장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분은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였습니다. 성 베네딕토는 수도승으로서 여러 수도원을 설립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몬테카시노 수도원입니다. 성인은 자신의 수도원을 다스리기 위해 『성 베네딕토의 규칙서』를 집필했으며, 이 규칙서는 마침내 서방 교회 수도원들의 표준 규칙이 되었습니다. 성 베네딕토의 누이이자 베네딕토회 여자 수도 공동체의 설립자인 성녀 스콜라스티카도 이 세기의 성인으로 공경받습니다.
동방의 비잔틴 제국에서는 아리우스주의가 계속해서 분열과 긴장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5세기 말에 제노 황제는 일치 칙령이라는 문서를 반포했습니다. 이 문서는 칼케돈 공의회에서 정의한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교회의 공식 가르침과, 여전히 동방 교회를 괴롭히고 있던 아리우스주의의 견해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 긴장을 완화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523년, 정통 가톨릭 신앙을 지닌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누스 황제는 아리우스주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동방 제국 전역에서 칼케돈 공의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도록 명하는 칙령을 반포했습니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성당을 칼케돈 공의회를 따르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서방에서 로마는 아리우스주의자인 동고트족의 왕 테오도리쿠스 대왕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의 아리우스주의적 견해는 교황뿐 아니라 정통 신앙을 따르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과도 긴장을 일으켰습니다.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누스 1세 황제가 523년에 아리우스주의자들을 겨냥한 칙령을 반포하자, 테오도리쿠스는 격분했습니다. 그는 칙령이 철회되지 않으면, 동방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이 받는 것과 똑같은 대우를 서방에서 칼케돈 공의회를 따르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는 이 세기의 유일한 순교자인 성 요한 1세 교황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7세기에 선종한 위대한 선교 수도승 성 골룸바노가 유럽 곳곳에 수도 생활의 중심지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도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를 파견하여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함으로써 선교 활동에 힘썼으며, 잉글랜드 교회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18일: 성 요한 1세 교황 순교자 선택 기념일(대략 5세기 후반–526년)
Seventh Century
7세기는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복음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와 같은 위대한 성인들의 영향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6세기 말에 시작한 이 선교는 영국에서 그리스도교가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아일랜드 출신 수도승인 성 골룸바노는 유럽 일부 지역의 복음화와 개혁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특히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개혁이 필요했던 지역에서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동로마 제국으로도 알려진 비잔틴 제국에서 교회는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며 황제의 통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신학의 발전과 정치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527년부터 565년까지 이어진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통치는 옛 서로마 제국 영토를 되찾으려는 시도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 건립으로 특히 주목할 만했습니다.
옛 서로마 제국의 영토에서는 여러 게르만 왕국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서고트족은 6세기 말까지 아리우스주의에서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하였습니다. 오늘날의 프랑스와 독일 일부를 다스리던 프랑크족은 메로빙거 왕조 아래에서 가톨릭 신앙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처음에는 아리우스주의 그리스도교를 믿었던 롬바르드족은 6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넓은 지역을 지배하였으며, 점차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교황청과 비잔틴 제국은 이탈리아 남부 일부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였습니다.
세비야의 성 이시도로는 587년 무렵 레안데르 주교와 함께 서고트 왕 레카레드를 설득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버리고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면서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601년에는 레안데르의 뒤를 이어 세비야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는 힘 있는 설교와 방대한 저술 활동으로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온갖 지식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인 어원론은 중세 유럽 교육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7세기에는 그리스도께 인간의 의지는 없고 신적 의지만 있다고 주장한 신학 논쟁인 단의론 논쟁도 해결되었습니다. 비잔틴 황제에게 파견된 교황 사절을 지낸 성 마르티노 1세 교황은 이 이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649년 황제의 동의 없이 라테라노 공의회를 소집하였습니다. 비잔틴 황제가 단의론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었기에, 이 일로 그는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마침내 순교하였습니다.
또한 7세기에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가 태동하여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정복하였고, 이는 그 지역의 그리스도교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은 서방 수도 생활을 변화시키는 데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도원은 학문과 영성, 문화 보존의 중심지가 되어 교회의 삶과 사명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27일: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선택 기념일(6세기 초–604년)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기념일(약 540–604년)
11월 23일: 성 골룸바노(콜룸바누스) 아빠스—선택 기념일(543–615년)
Eighth Century
8세기에 가장 극심한 분열을 일으킨 논쟁 가운데 하나는 성화상 파괴 논쟁이었습니다. 당시 이슬람 칼리프 국가는 이전에 비잔틴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중동의 일부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슬람 칼리프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을 허용하였지만, 성화상을 공경하는 가톨릭 관행에 대해서는 점점 더 우려하게 되었습니다. 721년 칼리프는 성화상 사용을 금지하고 모든 교회의 성화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매우 신심 깊은 사람이었던 비잔틴 황제 레오 3세 역시 성화상 사용을 우려하게 되어 동로마 제국에서 이를 금지하였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황제에게 반대하자, 레오는 그를 폐위하고 교황의 허락 없이 새 총대주교를 임명하였습니다. 교황 역시 레오와 칼리프에게 반대하면서 심각한 긴장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성화상을 비방하는 이들을 반박하는 변론.을 저술하여 성화상 사용을 옹호하고 나선 이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사막에 살던 수도승,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이었습니다. 이 저술에서 성 요한은 성화상 사용의 근거를 깊이 있는 신학적 논증으로 밝혔습니다.
같은 세기에 앵글로색슨족의 영국에서도 가톨릭 신앙은 계속 꽃을 피웠습니다. 그곳에서 존자 성 베다는 가르침과 영국 민족의 교회사. 저술을 통해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는 또한 부활절 날짜를 정확히 산정하는 데 이바지하였으며, 통찰력 있는 성경 주해들을 남겨 유럽 전역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새로 복음화된 앵글로색슨족의 영국은 성 보니파시오의 선교 활동을 통해 이교도 게르만 부족들의 복음화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앵글로색슨족의 영국에서 태어난 성 보니파시오는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독일 북부에 해당하는 조상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한 차례 선교에 실패한 뒤 그는 교황과 상의하였고, 교황은 그에게 다시 돌아가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이후 3년 동안의 복음화가 매우 풍성한 결실을 맺자, 교황은 그를 주교로 서품하고 프랑크족의 전 영토를 맡겼습니다. 그는 이후 30년 동안 프랑크 교회를 개혁하고 많은 이교도를 신앙으로 이끄는 데 이바지하였습니다.
이 세기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교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 일은 교황청과 프랑크 왕들 사이의 동맹이었습니다. 이 동맹은 756년 교황령의 성립으로 이어졌으며, 9세기 초 신성 로마 제국이 탄생하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25일: 성 베다 사제 학자—선택 기념일(약 673–735년)
Ninth Century
9세기는 800년 성탄 대축일에 레오 3세 교황이 샤를마뉴에게 초대 신성 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 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샤를마뉴의 대관식은 가톨릭교회와 프랑크 왕국의 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하여,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에서 교회가 성장하고 안정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이 대관식은 후대에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 사이에서, 특히 교회에 대한 온전한 통치권을 지닐 교황의 권리를 둘러싸고 일어날 새로운 논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샤를마뉴의 후원 아래 교회에서는 예술과 문화, 학문이 부흥했으며, 특히 수도원들이 계속해서 번성했습니다. 제국 전역에서 전례와 성무일도가 표준화되었습니다. 독신 의무의 시행, 교육 개선, 성직 매매 금지 등 성직자 개혁도 이루어졌습니다. 수도원들은 중요한 고전 문헌을 필사하고 보존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교회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교회법도 개혁되고 체계화되었습니다.
이 세기에도 동방(비잔틴) 교회와 서방(로마) 교회 사이의 긴장은 계속되었습니다. 비잔틴 황제가 교황의 승인 없이 포티오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임명한 일로 858년에 교회 분열이 일어나 867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많은 수도원이 번성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는 프랑크 왕국의 북부 지역, 곧 오늘날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온 바이킹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끊임없는 바이킹의 약탈 위협에 대처하고자 교회는 전쟁 대신 복음화 전략을 택했습니다. 831년 성 안스가리오는 독일 북부에 새로 설립된 함부르크-브레멘 교구의 초대 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교구를 돌보는 책임에 더하여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을 가톨릭 신앙으로 이끄는 임무도 맡았습니다.
그 뒤 35년 동안 성 안스가리오는 교구를 안정시키고 신앙을 쇄신하며 북유럽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는 전쟁과 침략, 거듭되는 성당 파괴와 몰수 등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성당과 병원, 학교,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슬라브의 위대한 성인들 가운데 두 분인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도 이 세기에 사목 활동을 펼쳤습니다. 두 사람은 그리스의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슬라브계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에 아직 문자가 없던 어머니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치릴로와 메토디오가 수도 생활에 들어간 뒤, 모라비아의 라스티슬라프 공은 미카엘 3세 황제에게 오늘날의 체코에 해당하는 대모라비아로 선교사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의 백성은 프랑크 성직자들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언어 장벽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치릴로와 메토디오가 선교사로 선발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는 슬라브어를 위한 문자를 만들고 성경과 전례문을 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만든 문자는 여러 슬라브 언어의 표준이 되었고, 교회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837년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
2월 3일: 성 안스가리오 주교—선택 기념일(801–865)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기념일(성 치릴로: 약 827–869; 성 메토디오: 약 815–885)
Tenth Century
로마 보편 전례력에 수록된 성인 가운데 10세기에 선종한 분은 성 벤체슬라오와 성 아달베르토 두 분뿐이지만, 이 시기에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 성인들은 그 밖에도 여럿 있었습니다. 보헤미아의 공작이었던 성 벤체슬라오는 자기 지역에 가톨릭 신앙을 열성적으로 전파하고 이교 관습의 잔재를 없애고자 힘쓴 순교자로 기려집니다. 프라하의 주교이자 발트해 지역의 프로이센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선교사였던 성 아달베르토는 교구를 개혁하고 이교 관습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짧은 선교 활동과 순교는 훗날 보헤미아와 폴란드, 헝가리 전역에 신앙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계속해서 변모했으며, 962년 오토 대제로도 알려진 오토 1세가 요한 12세 교황에게 황제의 관을 받으면서 교황이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하는 관행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긴밀하면서도 긴장으로 가득 차 있음을 뚜렷이 드러냈으며, 특히 주교와 수도원장 임명에 대한 황제의 영향력 같은 문제에서 그러했습니다. 이 시기에 교황청과 로마 교황청 관료 기구는 부패와 정치적 조종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자주 어려움을 겪었는데, 여기에는 로마 귀족들의 간섭도 한몫했습니다.
동방에서는 비잔틴 교회가 로마 교회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계속 발전했습니다. 이 세기에는 큰 교회 분열이 없었지만, 동방과 서방 전통 사이의 신학적·전례적 차이는 갈수록 뚜렷해져 훗날 갈등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동유럽과 스칸디나비아에 남아 있던 이교 지역들을 복음화하려는 공동의 노력과 함께 선교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새로운 교구와 본당의 설립은 이 지역들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또한 베네딕도회 전통에 활력을 되찾아 주려는 중요한 수도 생활 개혁, 특히 클뤼니 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개혁은 성직자의 혼인과 성직 매매 같은 교회 내부의 문제들에 대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더욱 광범위한 개혁이 이루어질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Eleventh Century
10세기 말과 11세기 초에는 중요한 성인들이 여럿 등장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자이자 시인, 신학자, 철학자인 나레크의 성 그레고리오는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오랫동안 성인으로 공경받아 왔지만, 가톨릭교회의 보편 로마 전례력에는 최근에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포함되었습니다. 그는 지극히 내밀하고 신비로운 기도와 묵상을 모은 문학 작품인 탄식의 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성 로무알도는 베네딕도회의 개혁 분파인 카말돌리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엄격한 고행과 고독의 삶을 증언했으며, 이탈리아 곳곳에 여러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는 1000년에 왕으로 즉위하여 자신의 영토 안에서 교회의 삶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그는 교구와 수도원을 설립하고 개혁했으며, 교회 지도자들과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성 헨리코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가운데 유일하게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성 스테파노와 마찬가지로, 그도 제국 전역에서 교회의 개혁과 발전을 돕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이 세기에 교회는 가장 고통스럽고 오래 지속되는 타격 가운데 하나를 겪었습니다. 동로마 제국의 교회는 수 세기 동안 로마에서 점점 멀어져 왔습니다. 여러 논쟁과 분열이 종종 해결되기도 했지만, 신학적 논쟁과 전례 관행, 교회 관할권을 둘러싼 이견이 계속된 결과, 1054년에 레오 9세 교황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미카엘 1세 케룰라리오스 총대주교는 서로를 파문했습니다. 이로써 교회는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로 갈라졌습니다.
이 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성인 가운데 한 분은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입니다. 여러 교황 아래에서 로마의 수석 부제로 봉사한 뒤 교황이 된 그레고리오는, 교회에 개혁이 필요하던 시기에 참된 개혁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성직자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독신 규율을 엄격히 시행했으며, 성직 매매를 뿌리 뽑고 세속 권력이 교회에 행사하던 통제력을 줄였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오 교황은 교황직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황의 권한에 관한 명확하고 간결한 27개 조항을 선포하여, 교황권을 황제를 비롯한 모든 세속 통치자의 권위 위에 두었습니다. 젊은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처음부터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교황은 그를 파문했습니다. 하인리히는 용서를 청하고 보속한 끝에 마침내 교회와 화해했습니다.
핵심 쟁점은 주교와 아빠스의 임명 문제였으며, 이를 서임권 논쟁이라고 부릅니다. 교황은 이러한 교회의 결정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주장했지만, 황제와 귀족들은 그 권한을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분쟁은 1122년 보름스 협약에 이르러서야 해결되었습니다.
1071년에 이슬람 침략 세력은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오늘날 튀르키예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를 빼앗으며, 로마 제국 영토 일부에 대한 지배를 계속 확대했습니다. 이에 1095년 우르바노 2세 교황은 비잔틴 제국에 우호의 뜻을 보이고자, 아나톨리아를 되찾고 7세기에 빼앗긴 성지를 회복하기 위한 제1차 십자군 원정을 호소했습니다. 1099년까지 십자군은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어 성지에 여러 십자군 국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인과 이슬람교도 사이의 긴장을 더욱 높였고, 그 여파는 이후 수 세기 동안 이어졌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2월 27일: 나레크의 성 그레고리오 아빠스 학자—선택 기념일 (951–1003년경)
7월 13일: 성 헨리코—선택 기념일 (973–1024)
6월 19일: 성 로무알도 아빠스—선택 기념일 (951년경–1027)
8월 16일: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선택 기념일 (975년경–1038)
2월 21일: 성 베드로 다미아니 주교 학자—선택 기념일 (1007–1072)
4월 11일: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기념일 (1030–1079)
Twelfth Century
지난 세기에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시작한 교회 개혁은 12세기에도 이어졌습니다. 교회법이 집대성되고 체계화되었으며, 스콜라 학문이 확립되고 대학들이 생겨났습니다. 십자군 원정은 계속되었고, 서임권 논쟁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며, 수도 생활이 확산되고 성모 신심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성 브루노는 12세기 초인 1101년에 선종했습니다. 그는 저명한 학자로서 교회 안에서 높은 지위에 오를 가능성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출세욕으로 이끄는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오늘날 가장 철저한 형태로 꼽히는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084년 성 브루노는 우르바노 2세 교황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알프스에 최초의 카르투시오회 수도원인 그랑드 샤르트뢰즈를 설립했습니다. 카르투시오회 수도자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지만, 각기 따로 떨어진 은수처에 거주하며 고독과 깊은 기도 속에서 함께 은수 생활을 합니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와 성 노르베르토도 이 세기에 계속되던 수도 생활의 개혁과 강화에 이바지했습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클레르보에 중요한 수도원을 설립했으며, 그가 선종할 무렵 이 수도원의 수도자 수는 약 700명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그는 지성뿐 아니라 마음에도 양식을 주어 하느님과 더욱 깊고 친밀한 일치로 이끌고자 하는 심오한 영적 저술들을 남겼습니다. 복되신 성모님을 향한 그의 사랑 또한 뚜렷이 드러났으며, 이는 이후 성모 신심이 더욱 널리 퍼지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 노르베르토는 주교이자 프레몽트레회의 설립자로, 이 수도회는 수도 생활과 성직자의 사목 생활을 결합하고자 했습니다. 이 세기에는 여자 수도회들도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수녀원장이자 신비가이며 여러 학문에 두루 통달했던 빙엔의 성녀 힐데가르트와 같은 이들의 영감 어린 지도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성녀는 자신이 체험한 스물여섯 가지 신비로운 환시를 기록한 글로 특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환시들은 세상의 창조, 하느님의 본성,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인류, 강생, 성경 해석, 타락, 구속, 교회, 성사, 세상의 종말을 비롯한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세기에 스콜라 철학이 지적 운동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승이자 철학자이며 신학자로서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캔터베리의 성 안셀모는 후대의 사상가들을 위해 이 운동의 토대를 놓는 데 기여했습니다. 파리, 볼로냐, 옥스퍼드에서는 수도원들이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가운데 대학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주교좌성당 학교들도 늘어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임권 투쟁은 1122년 보름스 협약으로 해결을 향한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이 협약은 주교와 수도원장 임명에서 교회와 세속 통치자들이 각각 지니는 권리를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0월 6일: 성 브루노 사제—선택 기념일(1030–1101)
4월 21일: 캔터베리의 성 안셀모 주교 학자—선택 기념일(약 1033–1109)
5월 15일: 성 이시도로—미국 선택 기념일(약 1070–약 1130)
6월 6일: 성 노르베르토 주교—선택 기념일(약 1080–1134)
8월 20일: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기념일(1090–1153)
Thirteenth Century
13세기에는 탁발 수도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등장하여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프란치스코회를, 성 도미니코는 도미니코회를 설립했습니다. 이 수도회들은 정주 생활과 수입원으로서의 토지 확보를 중시하던 기존의 수도회들과 달리 청빈과 설교, 이동하며 살아가는 삶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 새로운 탁발 수도회들은 새롭게 도시화되던 유럽을 복음화하는 데 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아마도 교회 역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성인일 것입니다. 철저한 회개를 체험한 뒤, 성인은 자신을 따르는 몇몇 사람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철저한 청빈을 받아들여 음식을 구걸하고 나병 환자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순회 설교자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에 프란치스코회의 회원 수는 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생애 말년에 치품천사에게서 오상을 받았기에 흔히 ‘치품천사적 사부’라고 불립니다. 성 프란치스코 곁에는 성녀 클라라가 있었습니다. 성녀는 여성들을 위한 프란치스코회의 관상 수도회인 가난한 클라라회를 설립했습니다.
13세기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보나벤투라, 성 알베르토 대성인과 같은 뛰어난 사상가들 덕분에 흔히 ‘스콜라 철학의 황금기’라고 불립니다. 이 세기에 나온 가장 중요한 저술 가운데 하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으로,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저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스콜라 철학은 교리의 발전을 촉진하고자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도움을 받아 신학적 탐구에 접근했습니다. 이전 세기에 설립된 대학들은 번성하여 이러한 새로운 접근법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3세기에도 성모 신심은 계속 꽃피었으며, 카르멜산의 성모, 고통의 성모, 로레토의 성모와 같은 새로운 신심이 나타나면서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도 크게 발전했고 성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성체 축일이 제정되었습니다. 예술, 특히 고딕 건축과 성음악도 크게 발전하여 교회의 깊어지는 신심 생활을 반영하는 한편 그 심화에 기여했습니다.
교황들은 계속해서 권한을 중앙에 집중시키고 강화했으며, 공의회들은 이단에 맞서고 교리를 규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이단자들을 다루기 위해 교황청 이단 심문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교황은 제4차 십자군을 소집했지만, 십자군은 성지를 탈환한다는 임무에서 벗어나 1204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약탈했습니다. 교황이 가담자들을 파문했음에도 이 비극은 동방과 서방의 분열을 더욱 깊게 했습니다. 동방은 끝내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으며, 이는 약 2세기 뒤 이슬람 세력에 정복되는 데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7월 16일: 카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선택 기념일(12세기 말–13세기 초)
8월 8일: 성 도미니코 사제—기념일(1170–1221)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기념일(1182–1226)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기념일(1195–1231)
11월 17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기념일(1207–1231)
2월 17일: 마리아의 종 수도회 창설자 7성인—선택 기념일(약 1240)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기념일(약 1240)
10월 16일: 성녀 헤드비제 수도자—선택 기념일(1174–1243)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기념일(약 1193–1253)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대축일(1264년 로마 보편 전례력에 처음 수록)
8월 25일: 성 루도비코 국왕—선택 기념일(1214–1270)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기념일(약 1217–1274)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기념일(1225–1274)
1월 7일: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사제—선택 기념일(1175–1275)
Fourteenth Century
14세기는 아비뇽 교황 시대, 교회의 대분열, 흑사병, 신비주의, 스콜라 철학의 쇠퇴, 부패, 개인 신심의 성장, 그리고 고딕 미술과 건축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이 세기에 선종한 시성 성인 가운데 보편 로마 전례력에 포함된 성인은 네 분뿐이지만, 그분들이 미친 영향은 컸습니다.
1305년, 프랑스 출신의 클레멘스 5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로마의 적대적인 정치 상황과 자신의 프랑스 출신 배경 때문에, 클레멘스 5세 교황은 프랑스 아비뇽에 거처를 정하였습니다. 당시 아비뇽은 교황령에 속해 있었지만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1309년, 클레멘스 교황은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 내부에 큰 혼란이 일어났고, 프랑스 왕실의 간섭과 정치적 책략이 이어졌습니다. 그 뒤를 이은 일곱 교황도 아비뇽에 거주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세 분의 위대한 신비가인 성녀 제르트루다 대성녀, 스웨덴의 성녀 비르지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하느님께 수많은 사적 계시를 받아 기록함으로써,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교회에 신비적 영성에 관한 풍요로운 지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성녀 비르지타와 성녀 가타리나는 깊은 신비 체험과 저술 활동뿐 아니라 교회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교황에게 로마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분들의 기도와 서한, 간청이 결실을 맺어,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은 1377년에 교황좌를 로마로 다시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이가 기뻐하였지만, 모든 이가 이 귀환을 두 팔 벌려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그레고리오 교황이 선종하고 우르바노 6세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아비뇽에 있던 이들은 이 선출에 이의를 제기하고, 교황좌를 아비뇽에 유지하려고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선출하였습니다. 이 ‘교회 대분열’은 ‘서방 교회 대분열’이라고도 불리며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성인들조차 의견이 갈렸습니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우르바노 교황을 지지하였지만, 성 빈첸시오 페레르는 처음에 클레멘스 7세를 지지하였습니다. 1417년, 이 문제는 마침내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해결되었으며, 성 빈첸시오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이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데 힘썼습니다.
‘흑사병’이라 불리는 전염병이 덮쳤을 때, 유럽은 엄청난 영향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2,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사망자가 2억 명에 이르렀다는 추산도 있습니다. 수도원과 성직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많은 평신도가 하느님께서 왜 이토록 참혹한 일을 허락하시는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에 영적 쇄신과 개인 기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1월 16일: 성녀 제르트루다 대성녀 동정—선택 기념일 (1256–1302)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대축일 (1334년 보편 로마 전례력에 추가)
7월 4일(미국에서는 7월 5일): 포르투갈의 성녀 엘리사벳—선택 기념일 (1271–1336)
Fifteenth Century
교회 대분열이 끝나면서 15세기에 교황직은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기 시작하였지만, 곧 다른 도전들에 직면하였습니다. 공의회가 교황보다 더 큰 권위를 지닌다는 견해인 공의회 수위설이 대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5세기에는 교회 내부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성직자 교육의 부실, 도덕적 타락, 교회 직책을 사고파는 성직 매매, 대사 매매와 같은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다음 세기 개신교 종교 개혁을 불러온 핵심 요인들에 속하였습니다.
이 세기에는 르네상스가 탄생하였습니다. 르네상스는 유럽 역사에서 고대 그리스 학문으로의 회귀, 과학의 진보, 새로운 형태의 미술과 건축이 나타난 시기로, 이 모든 변화는 인문주의와 같은 철학 사상에 힘입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사상과 고전 학문은 통치와 종교에 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440년의 인쇄기 발명은 이 흐름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이 세기에는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탄생하였고, 마침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학문, 예술, 문화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킨 운동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예술과 문학, 과학적 탐구가 꽃을 피웠습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인간 경험과 개성의 가치, 그리고 고전 문헌을 원어로 연구하는 일을 중시한 철학인 인문주의가 있었습니다.
귀족들이 작은 영토들을 다스리던 봉건제는 이 세기에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에서 중앙 집권적 국민 국가가 등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강력한 군주정이 부상하여 권력을 공고히 하고 더욱 통합된 중앙 집권적 정부를 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정부 형태는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과학이 크게 발전하였고, 경험적 증거를 점점 더 중시하면서 자연 세계에 대한 중세의 이해에 도전하였습니다. 1440년경 인쇄기가 발명되면서 문학 작품과 학술 저술을 더 널리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통치 방식과 종교 관행에 관한 새로운 의문들이 제기되었고, 이는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날 중대한 사회적·종교적 변화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스콜라 철학이 여전히 존속하였지만, 신비주의와 하느님을 만나는 개인적 체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개인 신심도 확산되었습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면서 동로마(비잔틴) 제국은 종말을 맞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 사이에 화해를 위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결실은 거의 없었습니다.
15세기 말에는 탐험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으며, 특히 1492년 신대륙 발견 이후 더욱 커졌습니다. 이 발견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화뿐 아니라 활발한 선교 활동의 발판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4월 5일: 성 빈첸시오 페레르 사제—선택 기념일 (약 1350–1419)
3월 9일: 로마의 성녀 프란치스카 수도자—선택 기념일 (1384–1440)
5월 20일: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사제—선택 기념일 (1380–1444)
10월 23일: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선택 기념일 (1386–1456)
Sixteenth Century
16세기는 혼란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수많은 위대한 성인도 배출했습니다. 1517년 아우구스티노회 사제 마르틴 루터 신부는 「95개조 논제」를 발표했고, 이는 개신교 종교 개혁, 또는 개신교 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루터 신부는 이 논제에서 대사 매매와 관련하여 지속되던 폐단 등 여러 정당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루터 신부의 접근 방식과 그를 따르던 이들의 구호, 그리고 그에 대한 교회의 단죄는 교회와 여러 나라 안에 급격한 불화와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곧 장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 같은 이들도 다른 의문과 문제들을 제기하며 그 뒤를 따랐습니다. 루터의 영향력은 특히 독일에서, 칼뱅의 영향력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두드러졌으며, 울리히 츠빙글리의 영향력은 주로 스위스 취리히에 미쳤습니다.
1519년 루터는 교황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며 반대의 수위를 더욱 높였고, 1520년 레오 5세 교황은 루터의 저술을 단죄했습니다. 이에 루터는 교황 칙서를 공개적으로 불태웠습니다. 1521년 루터는 보름스 제국 의회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 황제에게 단죄를 받고 이단자로 선포되었습니다. 1523년에는 루터를 따르던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 두 명이 이단을 주장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525년 독일에서는 루터를 지지하는 농민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습니다. 1530년에 이르러 여러 독일 제후가 루터의 사상을 지지하게 되었고,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신앙 고백을 공식적으로 제시하면서 제국 내부의 분열이 더욱 공식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533년 잉글랜드의 헨리 8세 국왕은 교황에게 자신의 혼인 무효를 인정해 달라고 고집하다가 클레멘스 7세 교황에게 파문당했습니다. 1534년 헨리는 스스로 잉글랜드 교회의 최고 수장임을 선언하여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에서 분리시켰습니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 16세기를 가장 밝게 비춘 빛은 트리엔트 공의회와 그 개혁을 실행하는 데 힘쓴 성인들이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5년에 시작되어 1563년까지 이어졌으며, 교회 내부의 개혁과 개신교에서 나타나던 오류를 모두 다루었습니다. 교회 안의 폐단에 대처하고, 성사와 구원의 본질, 교회의 권위 등에 관한 핵심 가르침을 재확인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훗날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으로 이어질 불씨를 지폈고, 많은 위대한 성인이 쇄신의 횃불을 이어받았습니다.
16세기에는 당면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수도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성 가예타노는 1524년에 테아티노회를, 성 안토니오 마리아 즈카르야는 1530년에 바르나바회를,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1535년에 우르술라회를,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는 1540년에 예수회를, 성 필립보 네리는 1575년에 오라토리오회를 창립했습니다. 이 수도회들은 고통받는 교회에 새로운 선교 열정을 불어넣고, 교회를 수호하며, 교육과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실천에 힘썼습니다. 가르멜회와 프란치스코회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수도회들 안에서도 개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예수의 성녀 데레사(아빌라)와 십자가의 성 요한은 수도 생활의 쇄신과 신비 신학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 가롤로 보로메오처럼 굳건한 주교들도 나서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을 실행하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16세기에는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를 향한 선교 활동도 이루어졌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그리고 뒤이어 성 바오로 미키가 아시아 복음화에 나섰습니다. 모그로베호의 성 투리비오는 페루 리마의 대주교가 되어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성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하시어 오늘날의 멕시코 지역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 선포자 가운데 한 분이 되셨으며, 과달루페의 성모님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계십니다. 성 베드로 카니시오, 성 요한 레오나르디,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지그마링겐의 성 피델리스 같은 다른 성인들은 개신교 종교 개혁에 맞서 유럽에서 새로운 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이 유럽 선교사들 대부분은 16세기에 활동을 시작하여 17세기까지 이어 갔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4월 2일: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 은수자—선택 기념일 (1416–1507)
12월 12일: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미국에서는 축일 (1531)
6월 22일: 성 요한 피셔 주교 순교자와 성 토마스 모어 순교자—선택 기념일 (성 요한 피셔: 1469–1535; 성 토마스 모어: 1478–1535)
2월 8일: 성 예로니모 에밀리아니 설립자—선택 기념일 (1486–1537)
7월 5일: 성 안토니오 마리아 즈카르야 사제—선택 기념일 (1502–1539)
1월 27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녀—선택 기념일 (1474–1540)
8월 7일: 성 가예타노 사제—선택 기념일 (1480–1547)
12월 9일: 성 후안 디에고 은수자—선택 기념일 (1474–1548)
3월 8일: 천주의 성 요한 수도자—선택 기념일 (1495–1550)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기념일 (1506–1552)
7월 31일: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사제—기념일 (1491–1556)
5월 10일: 아빌라의 성 요한 사제 학자—선택 기념일 (1499–1569)
4월 30일: 성 비오 5세 교황—선택 기념일 (1504–1572)
12월 23일: 켄티의 성 요한(칸티오) 사제—선택 기념일 (약 1390–1473)
10월 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기념일 (1515–1582)
11월 4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기념일 (1538–1584)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기념일 (약 1542–1591)
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기념일 (1568–1591)
Seventeenth Century
쇄신과 선교 활동, 개인의 성덕은 16세기에서 17세기로 이어졌으며, 더욱 놀라운 성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성 로렌조 루이스와 동료들 같은 아시아의 선교사들은 일본에서 피를 흘렸고, 성 안드레아 둥락과 동료들은 베트남에서 수 세기에 걸쳐 이어질 순교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 성 베드로 클라베르는 잔혹한 대우를 받던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을 위해 참으로 그들의 종이 되었으며, 북쪽으로는 오늘날의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이사악 조그 사제 및 동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예수회는 이러한 전 세계 복음화 노력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유럽 군인과 이주민이 새로운 땅에서 원주민의 권리를 침해했지만, 교회의 역할은 신앙을 전하고 원주민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페루의 교회는 꽃피기 시작했으며, 그 땅에서 태어난 새로운 성인들인 리마의 성녀 로사와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는 깊은 겸손과 기도, 사랑으로 증거하였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성녀 가테리 테카크위타가 같은 증거의 삶을 살았습니다.
종교 개혁으로 말미암은 도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계몽주의의 시작과 함께 합리주의라는 지적·철학적 운동도 나타났습니다. 이 운동은 이성과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종교와 과학, 통치 등의 영역에서 전통적 권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성은 지식의 주된 원천이자 검증 기준이 되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앞서 언급한 성 베드로 가니시오, 성 요한 레오나르디,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지크마링겐의 성 피델리스가 종교 개혁에 맞서는 훌륭한 활동을 이어 갔으며, 계몽주의 사상에서 제기되는 물음들에 응답했습니다. 17세기에는 이미 확립된 교회 조직 안에서 전례 개혁, 교회 교리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돕는 지속적인 교리 교육, 성직자 개혁, 성직자의 올바른 양성을 위한 신학교 제도 수립을 통해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이 본격적으로 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유럽과 잉글랜드에서 내전도 잇따랐는데, 특히 계속되는 종교 갈등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데 파치와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같은 성인들에게 영감을 받아 개인의 신심도 계속 깊어졌습니다. 두 성녀는 모두 신비가로서, 하느님과의 내적 만남에 관한 감동적인 기록을 남겼으며, 이 기록은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게 됩니다. 성 빈첸시오 드 폴과 성 가밀로 데 렐리스는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섬기는 데 헌신했고,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위대한 영적 스승들 가운데 들었으며, 그리고 성 요셉 데 갈라산즈와 성 요한 외드는 교육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성 요사팟과 같은 성인들은 11세기 이래 수 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3월 23일: 성 투리비오 데 모그로베호 주교—선택 기념일(1538–1606)
5월 25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데 파치 동정—선택 기념일(1566–1607)
10월 9일: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선택 기념일(1541–1609)
7월 14일(미국에서는 7월 18일): 성 가밀로 데 렐리스 사제—선택 기념일(1550–1614)
8월 23일: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선택 기념일(1586–1617)
7월 21일: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 학자—선택 기념일(1559–1619)
9월 17일: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주교 학자—선택 기념일(1542–1621)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기념일(1567–1622)
4월 24일: 지크마링겐의 성 피델리스 사제 순교자—선택 기념일(1577년경–1622)
11월 12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기념일(1580–1623)
9월 28일: 성 로렌조 루이스와 동료 순교자들—선택 기념일(1600년경–1637)
11월 3일: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선택 기념일(1579–1639)
8월 12일: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선택 기념일(1572–1641)
10월 19일: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이사악 조그 사제 순교자 및 동료 순교자들—미국: 기념일(1642–1649년 사이에 순교)
8월 25일: 성 요셉 데 갈라산즈 사제—선택 기념일(1556–1648)
9월 9일: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미국 기념일(1581–1654)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기념일(1581년경–1660)
10월 2일: 수호천사—기념일(1670년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
8월 19일: 성 요한 외드 사제—선택 기념일(1601–1680)
7월 14일: 성녀 가테리 테카크위타 동정—미국 기념일(1656–1680)
9월 1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명—선택 기념일(1684)
Eighteenth Century
18세기에 계몽주의는 지적 운동으로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계몽주의는 이성과 개인주의, 종교·과학·정치의 전통적 권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한층 더 강조하는 한편, 이성을 지식의 일차적 원천이자 척도로 삼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새로운 사상들이 교회의 오랜 교리와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이는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는 가톨릭교회에 지속적인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세속주의가 대두하고 가톨릭 군주국들이 쇠퇴했으며, 그 결과 유럽의 여러 정치 활동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고자 18세기에는 새로운 수도회들이 나타났습니다. 십자가의 성 바오로가 1720년에 설립한 예수 고난회와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가 1732년에 설립한 구속주회가 그 예입니다. 예수 고난회는 기도와 관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집중하고, 피정을 지도하며 사목 활동에 힘썼습니다. 구속주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설교하고 선교 활동을 펼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들은 사목적 돌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친근하고 연민 어린 설교 방식으로 알려졌습니다. 1680년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이 설립한 그리스도 교육 수사회는 18세기에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 수도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교육에 주력했으며, 근대적 교수법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8세기에는 특히 성 루도비코 드 몽포르와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의 가르침을 통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새롭게 강조되면서 개인의 신심 생활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교회 전례력에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이 추가되면서 이러한 개인 신심이 한층 더 강조되었습니다. 예수 성심 신심도 확산되었습니다.
선교 활동은 특히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계속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성 후니페로 세라와 동료 선교사들은 오늘날 미국 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선교 활동을 확대했습니다. 베트남과 일본에서는 신앙이 꾸준히 성장하는 가운데 대규모 순교가 이어졌으며, 중국과 한국에서도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1773년, 유럽 군주들의 강한 정치적 압력을 받은 클레멘스 14세 교황은 예수회를 해산했습니다. 이는 예수회의 선교 활동뿐 아니라 유럽에서 계몽주의 사상과 개신교 종교 개혁에 맞서던 역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수회는 또한 가톨릭교회 안에서 원죄, 인간의 타락, 하느님의 은총과 예정설을 강조한 신학 운동인 얀센주의의 출현에도 맞섰습니다. 얀센주의는 엄격한 금욕과 잦은 고해성사를 비롯한 엄격한 생활 방식을 옹호하면서도, 인간의 부당함에 대한 그릇된 관점 때문에 영성체를 꺼리도록 했습니다. 예수회 해산은 선교와 교육 활동에 공백을 남겼을 뿐 아니라, 이러한 당대의 도전에 맞서 가톨릭 교리를 지성적으로 옹호하는 일에도 공백을 남겼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기념일 (1716년 보편 로마 전례력에 수록)
4월 28일: 성 루도비코 그리뇽 드 몽포르 사제—선택 기념일 (1673–1716)
4월 7일: 성 요한 밥티스타 드 라 살 사제—기념일 (1651–1719)
10월 19일(미국에서는 10월 20일):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미국: 선택 기념일 (1694–1775)
7월 4일: 독립 기념일—미국 선택 기념일 (1776년 7월 4일)
Nineteenth Century
이 세기의 성인들 가운데 여럿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의 혼란기에 태어났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에서 공적인 예배의 억압, 성당과 재산의 몰수, 수천 명에 이르는 성직자의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또한 세속주의와 민족주의가 계속 확산되면서 교회의 정치적·지성적·문화적 영향력이 약화되어 유럽 전역의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와 과학 및 산업의 발전은 유럽의 지형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교리와 사람들이 인정하던 교회의 도덕적 권위에도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돕고 교회의 유구한 가르침을 옹호할 많은 이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성 존 헨리 뉴먼은 신앙과 지성적 탐구를 통합하는 교육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신학적 기여는 교회가 근대의 철학적·신학적 문제들과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교이자 클라렛 선교 수도회의 설립자인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은 설교하고 저술하며 도서관과 학교를 세워, 스페인에서, 그리고 6년 동안은 쿠바에서 성직자와 평신도 교육에 힘을 보탰습니다.
그 밖의 저명한 성인들은 성덕과 소박함, 가르침과 저술로 시대의 도전에 맞섰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가장 혹독한 시기를 겪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사목적 열정과 성사 집전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내적 회개와 하느님 사랑을 향한 깊은 열망에 불을 지폈습니다. 성 요한 보스코는 산업 혁명기에, 특히 일자리와 도덕적 지침이 필요한 소년들에게 빛을 비추는 등대였습니다. 그는 영적 양성과 실무 기술을 결합하여 학생들이 근대 세계에서 신앙을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준비시켰습니다.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는 프랑스에서 성체 수도회를 설립했으며, 열정적인 성체의 사도였습니다.
아메리카의 교회는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 성녀 로즈 필리핀 뒤셴, 성 요한 노이만,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젤로스와 복녀 마리 로즈 뒤로셰가 이주민들을 돌보고, 몰로카이의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가 하와이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섬기는 가운데 계속 성장했습니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선교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은 쿠바에서 주교로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 베드로 샤넬은 오세아니아의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 그리고 동료 101위는 한국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들은 아프리카에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개인의 신심 생활과 여러 신심 행위는 계속 꽃을 피웠습니다. 비오 9세 교황은 1854년에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를 교의로 선포했으며, 1858년에는 성모님께서 친히 프랑스 루르드에서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발현하시어 “원죄 없이 잉태된 이”라는 새로운 칭호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1856년에는 예수 성심 축일이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되어, 지난 여러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온 예수 성심 신심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기 말에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소집되어 주로 교리와 교의에 관한 교황의 권위를 다루었습니다. 공의회는 신앙과 이성의 관계도 다루었으며, 합리주의와 유물론을 단죄했습니다.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은 산업 혁명으로 발생한 사회 문제에 응답하여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했습니다. 이 회칙은 노동 계층의 처지를 다루고, 다음 세기에 더욱 본격적으로 대두하게 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1월 4일: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 수도자—기념일: 미국 (1774–1821)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기념일 (1839–1867년 순교)
4월 28일: 성 베드로 샤넬 사제 순교자—선택 기념일 (1803–1841)
10월 6일: 복녀 마리 로즈 뒤로셰 동정녀—미국 선택 기념일 (1811–1849)
11월 18일: 성녀 로즈 필리핀 뒤셴 동정녀—미국 선택 기념일 (1769–1852)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대축일 (1854년 보편 로마 전례력에 수록)
예수 성심—대축일 (1856년 보편 로마 전례력에 수록)
2월 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선택 기념일 (1858)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아르스의 본당 신부) 사제—기념일 (1786–1859)
1월 5일: 성 요한 노이만 주교—기념일: 미국 (1811–1860)
미국: 추수 감사절—선택 기념일(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국경일로 선포)
10월 5일: 복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젤로스 사제—미국 선택 기념일(1819–1867)
8월 2일: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 사제—선택 기념일(1811–1868)
10월 24일: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선택 기념일(1807–1870)
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기념일(1860–1886)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기념일(1815–1888)
5월 10일: 몰로카이의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 사제—미국 선택 기념일(1840–1889)
10월 9일: 성 요한 헨리 뉴먼(잉글랜드와 웨일스 기념일)(1801–1890)
Twentieth Century and Beyond
20세기에는 두 차례 세계 대전의 참화,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대두, 순교,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 문제, 기술 발전, 전례의 변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세상에 드러난 추문, 새로운 신심, 수많은 성인의 시성이 이어졌습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참으로 사목적인 교황직을 수행하며 이 세기를 열었습니다. 본당 사제의 마음을 간직한 교황은 겸손한 개혁가이자 스승으로서 성모님과 성체께 깊은 신심을 지녔습니다. 교황은 새롭게 등장한 산업 사회의 영향으로 예술과 철학, 사회 조직의 새로운 형태로 표현되던 근대주의에 단호히 맞섰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무렵, 교황은 비통함에 잠겨 선종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전쟁 중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포르투갈 파티마의 세 목동 어린이에게 발현하시어 기도와 보속을 요청하시고, 교황이 러시아를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께 봉헌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간청을 따르지 않으면 앞으로 더 끔찍한 일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파티마의 성모님께서는 많은 이에게 큰 영감을 주셨으며, 수많은 기도를 바치게 하는 계기가 되셨습니다. 1925년에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임금이심을 세상에 일깨우고자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되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성녀 프란치스카 하비에르 카브리니와 성녀 가타리나 드렉셀이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하와이에서는 성녀 마리안네 코프가 그러하였습니다. 중앙아메리카에서는 교회와 국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와 동료들, 그리고 복자 미겔 아우구스틴 프로가 순교하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성 안드레 베세트는 캐나다 사람들에게 겸손한 삶으로 신앙을 증언하였습니다. 폴란드의 봉쇄 수녀이자 신비가인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는 이 세기 초에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성녀 파우스티나가 교회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21세기 초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 제정되고 성녀의 일기가 널리 알려진 뒤에야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역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에서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감을 주는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세상을 폐허로 만들었지만, 위대한 성인들도 배출하였습니다. 폴란드 사제이자 성모님께 깊은 신심을 지녔던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는 아우슈비츠에서 모르는 사람을 대신하여 자발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가르멜회 수녀이자 철학자로서 유다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도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교회는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필요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전례에서 큰 변화를 겪었으며, 성 요한 23세와 성 바오로 6세 같은 성인 교황들의 이끎을 받았습니다. 두 교황의 지도 아래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리스도인 일치와 현대 세계에 대한 교회의 접근 방식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였습니다.
20세기 후반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밝게 빛난 두 인물은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와 위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었습니다. 이 두 성인이 남긴 유산은 앞으로 여러 세기에 걸쳐 더욱 깊이 이해될 것이며, 하늘 나라에서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될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한 덕분에 종교와 정치적 성향을 초월하여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를 이끄는 책임을 맡아, 격변의 시기를 헤쳐 나가도록 도왔습니다. 교황은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참된 선교사이자 정통 교리에 충실하고 사목적 감수성을 지닌 지성인이었고, 깊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교황은 교회와 세상에 건전한 지침과 명확한 도덕적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이 세기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다음 묵상들을 연대순으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7월 6일: 성녀 마리아 고레티 동정 순교자—선택 기념일(1890–1902)
8월 21일: 성 비오 10세 교황—기념일(1835–1914)
11월 13일: 성녀 프란치스카 하비에르 카브리니 동정녀—미국 기념일(1850–1917)
5월 13일: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선택 기념일(1916–1917)
1월 23일: 성녀 마리안네 코프 동정녀—미국 선택 기념일(1838–1918)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대축일(1925년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
5월 21일: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 순교자와 동료 순교자들—선택 기념일(1869–1927)
11월 23일: 복자 미겔 아우구스틴 프로 사제 순교자—미국 선택 기념일(1891–1927)
7월 9일: 성 아우구스티노 자오룽과 동료 순교자 119위—선택 기념일(1648–1930)
1월 6일: 성 안드레 베세트 수도자—미국 선택 기념일(1845–1937)
10월 5일: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동정녀—선택 기념일(1905–1938)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기념일(1894–1941)
8월 9일: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에디트 슈타인) 동정 순교자—선택 기념일(1891–1942)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기념일(1944년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
2월 8일: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 동정녀—선택 기념일(1869–1947)
3월 3일: 성녀 가타리나 드렉셀 동정녀—미국 선택 기념일 (1858–1955)
10월 11일: 성 요한 23세 교황—선택 기념일 (1881–1963)
9월 23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비오 신부)—기념일 (1887–1968)
1월 22일: 태아의 법적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미국 기념일 (1973)
6월 26일: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사제 (1902–1975)
5월 29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선택 기념일 (1897–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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