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카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선택 기념일
12세기 말–13세기 초
볼리비아와 가르멜 수도회의 수호성인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전구를 청함
전례색: 백색
분량: 전문 – 요약문
팟캐스트 채널:
애플 – 스포티파이 – 아이하트 – 오디블
인용:
엘리야는 카르멜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으로 몸을 수그리고 머리를 양 무릎 사이에 묻었다. 그가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 쪽을 살펴보아라.” 하고 말하였다. 시종이 올라가 살펴보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엘리야는 “다시 가서 살펴보아라!” 하고 일곱 번이나 말하였다.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 그 젊은이가 “바다에서 사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올라옵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엘리야가 말하였다. “아합에게 올라가서, ‘비에 막히지 않도록 병거를 갖추어 산을 내려가십시오.’ 하고 전하여라.” 그러자 삽시간에 구름과 바람으로 하늘이 어두워지고 큰비가 내렸다. ~1열왕 18:42–45
묵상: 이스라엘 북서쪽 해안의 카르멜산 기슭에는 ‘바다의 별’이라는 뜻의 라틴어 이름을 지닌 가르멜 수도원, 스텔라 마리스가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바알의 예언자 450명에게 목숨을 건 대결을 제안했던 곳으로 여겨지는 동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엘리야는 승리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위 성경 구절에서처럼 시종이 “바다에서 사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고 보고하자, 엘리야는 3년 동안 이어진 가뭄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 작은 구름은 이내 메마른 땅 위로 쏟아지는 큰비로 바뀌었습니다. 훗날 가르멜회 수도자들은 엘리야가 본 이 광경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예표로 해석하였습니다. 성모님을 바다에서 올라오는 작은 구름이자 참된 ‘바다의 별’로 보았으며, 그분에게서 나와 3년의 가뭄을 끝낼 비를 그분의 아드님 예수님께서 쏟아 주시는 은총과 자비로 이해하였습니다.
엘리야 시대 이후에도 다른 은수자들이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를 본받아 카르멜산의 동굴에서 은수 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이 거룩한 은수자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시대부터 이 거룩한 산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문헌 기록으로 이들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은 13세기부터입니다. 바로 그 무렵인 1209년, 한 무리의 은수자들이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인 알베르토 주교에게 생활 규칙을 마련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알베르토 주교가 그 청을 들어주면서, 훗날 가르멜회로 알려지게 된 카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형제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바다의 별’이신 마리아, 곧 스텔라 마리스께 봉헌한 경당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1226년에는 호노리오 교황이 그들의 회칙을 승인하였습니다.
카르멜산에서 수도회가 설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슬람 침략자들이 인근 지역을 정복하자, 일부 은수자들은 성지를 떠나 잉글랜드의 에일즈퍼드를 비롯한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기록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잉글랜드에서 가르멜회 은수자들에게 처음 합류한 이들 가운데 시몬 스톡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가르멜회 수도자들은 베네딕도회, 시토회, 아우구스티노회처럼 보다 체계적인 공동체를 이루기보다는 은수자로 살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널리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시몬 스톡은 1247년, 여든두 살의 나이에 가르멜회 총장으로 선출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시몬과 동료 은수자들은 이 새로운 수도회가 교회 안에서 더 널리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청에 응답하시어, 1251년 한 팔에는 아기 예수님을 안으시고 다른 손에는 갈색 스카풀라를 드신 채 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 수도회의 이 수도복을 받아라. 이것은 너와 모든 가르멜회 수도자에게 주어지는 특전이니, 누구든 이것을 입고 죽는 이는 결코 영원한 불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 이것은 구원의 표징이 되고, 위험 속에서 보호가 되며, 평화의 보증이 될 것이다.”
그 뒤 여러 세기에 걸쳐 가르멜회 수도자들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대한 깊은 신심을 계속 키워 나갔습니다. 특히 스카풀라 수도복을 입고 성모님을 공경하는 전례를 발전시켰습니다. 15세기에는 가르멜 수도회가 확장되어 수도 생활을 하는 여성들도 포함하게 되었으며, 재속 제3회로도 발전하였습니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복되신 성모님께 대한 가르멜회의 이 신심을 ‘카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명칭으로 보편 교회 전례력에 포함하였습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교황이 스카풀라와 카르멜산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권장하였습니다. 1908년 바티칸 대사성은 이 신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발표하였습니다:
가르멜회 사제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다음과 같이 경건하게 믿어도 된다고 설교할 수 있습니다. 곧 생전에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늘 정결을 지켰으며, 성모 소성무일도를 바쳤거나,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경우에는 교회가 정한 단식일을 지키고 수요일과 토요일에 금육을 실천한(성탄 대축일이 그날에 해당하는 경우는 제외) 형제들과 회원들 가운데 애덕 안에서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은, 죽은 뒤에, 특히 교회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한 날인 토요일에, 마리아의 끊임없는 전구와 경건한 간청, 그분의 공로와 특별한 보호를 통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르멜산의 성모님을 공경할 때, 우리는 복되신 어머니뿐 아니라 가르멜 수도회 안에서 성모님께서 지니시는 중심적인 역할과 수도회가 널리 전해 온 성모 신심, 특히 스카풀라 신심도 함께 기립니다. 복되신 어머니를 향한 자신의 신심을 돌아보십시오.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있다면, 이 거룩한 신심을 통하여 얻게 되는 성모님의 어머니다운 전구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스카풀라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면, 성모님을 향한 내적 신심과 그분의 전구에 대한 신뢰를 겉으로 드러내는 표지로서 착용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 가르멜산의 성모님, 엘리야 예언자가 바다에서 작은 구름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환시를 통하여 성모님께서 오실 일이 예고되었습니다. 그 구름에서 내린 비가 메마른 땅을 적셨습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하느님이신 아드님께서 참된 자비의 비가 되시어 저희 위에 끊임없이 내리십니다. 제 영혼의 메마름에서 비롯된 갈증이 언제나 오직 성모님의 아드님과 그분께서 쏟아 주시는 자비 안에서만 채워지기를 바라도록 저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가르멜산의 성모님, 저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전례주년의 성인과 축일
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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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약본)
7월 16일: 카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선택 기념일
1226년경
볼리비아와 가르멜 수도회의 수호성인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전구를 청하는 분
이스라엘 북서쪽 해안의 가르멜산 기슭에는 가르멜 수도원인 스텔라 마리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라틴어로 ‘바다의 별’을 뜻합니다. 이 수도원은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바알의 예언자 450명에게 목숨을 건 대결을 벌여 승리한 곳으로 여겨지는 동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야는 종에게서 “사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는 보고를 받고 삼 년 동안 이어진 가뭄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 작은 구름은 곧 메마른 땅에 쏟아지는 큰비로 바뀌었습니다. 훗날 가르멜회 수도자들은 엘리야의 환시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예표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모님을 바다에서 올라오는 작은 구름, 참된 ‘바다의 별’로 보았습니다. 성모님에게서 나와 삼 년의 가뭄을 끝낼 비는 그분의 아드님 예수님께서 쏟아 주시는 은총과 자비로 이해되었습니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엘리야 시대 이후 가르멜산의 동굴들에 은수자들이 살았다고 하지만, 문헌 기록으로 그들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은 13세기부터입니다. 1209년, 한 무리의 은수자들이 예루살렘의 라틴 총대주교인 알베르토 주교에게 생활 규칙을 마련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알베르토 주교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훗날 가르멜회로 알려지게 된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형제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바다의 별이신 마리아, 곧 스텔라 마리스께 봉헌한 경당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1226년, 호노리오 교황은 그들의 회칙을 승인하였습니다.
가르멜산에 수도회가 설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슬람 침략군이 인근 지역들을 정복하였습니다. 이에 일부 은수자들은 성지를 떠나 영국의 에일즈퍼드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은수 생활을 하던 가르멜회 수도자들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새 수도회가 교회 안에서 더 널리 받아들여지도록 돕고자, 가르멜회의 총장 시몬 스톡과 그의 동료 은수자들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였습니다. 1251년, 성모님께서는 한 팔에 아기 그리스도를 안으시고 다른 팔에는 갈색 스카풀라를 드신 채 시몬에게 나타나시어 응답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 수도회의 이 수도복을 받아라. 이것은 너와 모든 가르멜회 수도자에게 주어지는 특전이니, 누구든지 이것을 입고 죽는 이는 결코 영원한 불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구원의 표지요, 위험 속에서 보호가 되며, 평화의 보증이 될 것이다.”
그 뒤 여러 세기에 걸쳐 가르멜회 수도자들은 스카풀라가 딸린 수도복을 입고 성모님을 기리는 전례를 발전시키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향한 깊은 신심을 키워 나갔습니다. 15세기에 가르멜회는 여성 수도자들과 재속 제3회까지 포함하도록 확대되었습니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가르멜회의 성모 신심을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칭호 아래 교회의 보편 전례력에 올렸습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교황이 스카풀라와 가르멜산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권장하였습니다. 1908년, 바티칸의 대사성은 이 신심에 관한 요약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대사성은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일정한 의무를 이행하거나 특정한 신심 실천을 지킨 이들이 죽은 뒤에 “마리아의 끊임없는 전구와 경건한 간청, 그분의 공로와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된다고 가르멜회가 설교하도록 허용하였습니다.
가르멜산의 성모님, 엘리야 예언자가 바다에서 작은 구름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환시를 통하여 성모님께서 오실 일이 예고되었습니다. 그 구름에서 내린 비가 메마른 땅을 적셨습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하느님이신 아드님께서 참된 자비의 비가 되시어 저희 위에 끊임없이 내리십니다. 제 영혼의 메마름에서 비롯된 갈증이 오직 성모님의 아드님과 그분께서 쏟아 주시는 자비 안에서만 채워지기를 바라도록 빌어 주소서. 가르멜산의 성모님, 저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