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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전 4권 모두 종이책 & 전자책으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목차

산란한 마음

부활 제5주일 (가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요한 14:1–2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사도들에게 하신 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러 떠나고 예수님께서 다른 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당신을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뒤에 나옵니다. 그 때문에 열두 사도는, 이제는 열한 명이 되었지만, 낙심했을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가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알아차리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베드로는 자신이 곧 예수님을 거슬러 중대한 죄를 짓게 되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뒤에 전해지는 대로, 베드로는 이 죄들을 짓자마자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울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죄의 유혹을 받으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낙심은 좋은 것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유혹을 받아도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없다면, 우리에게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가고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이는 더욱 나쁩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느끼는 낙심에 그대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정반대인 희망의 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예수님의 약속을 듣고 이해할 때에만, 죄를 지은 자리에서도 희망이 생겨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그 이유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시고 아버지 집의 그 자리로 그들을 데려가러 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이 약속을 믿음으로써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처음에 느꼈던 낙심을 떨쳐 버리고, 하늘 나라를 고대하며 하느님께 돌아설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낙심하십니까? 먼저 평소 되풀이하여 씨름하는 죄를 떠올려 보십시오. 특히 습관적인 죄는 슬픔과 회개와 희망으로 이어지거나, 절망과 덕의 포기로 끝나는 낙심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성 베드로처럼 자신의 죄를 두고 슬피 울도록 힘써야 합니다. 자신의 죄와 절망에 빠지려는 유혹을, 희망과 용기와 결의를 되찾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언제나 귀 기울여 들을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연민과 다정함을 느끼고, 그 사랑이 우리를 확신으로 채우도록 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모든 죄를 이겨 내고 아버지의 집에서 환영받으리라는 확신입니다.

오늘, 자주 되풀이하여 싸우는 죄가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낙담이 자신을 절망으로 이끄는지, 아니면 희망으로 이끄는지 살펴보십시오. 희망은 자기 힘만으로 죄를 이겨 낼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희망은 우리 주님의 연민과 우리를 구속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에서 나옵니다. 마음이 괴롭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희망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괴로운 마음을 일으켜 세우시고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해 주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십시오.

지극히 자비로우신 주님, 저는 죄인이지만 주님께서는 저에게 다정히 말씀하시고 회개하도록 부르시어, 제가 언제나 천국에 희망을 두게 하십니다. 제 죄를 참되고 거룩하게 뉘우치는 마음을 주시고, 언제나 주님께 돌아가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언젠가 저를 아버지 집의 충만함으로 이끌어 주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가지치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기

부활 제5주일 (나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요한 15:1–3

가지치기는 포도나무가 잘 자라도록 도울 뿐 아니라 더 많은 열매, 더 나아가 가장 좋은 열매를 맺도록 돕는 중요한 일입니다. 포도나무를 가지치기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결국 열매가 줄어들고 그 질도 떨어집니다. 가지치기를 잘하면 포도나무의 양분이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을 새눈으로 향하게 됩니다.

위의 가르침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를 가지치기하는 모습을 통해 믿음이 사랑으로 이어져야 함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참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은총의 새 삶에 필요한 양분을 주시는 유일한 원천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천국과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우리 주님을 알고 그분께 굳게 붙어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둘째, 주님께서는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모두 쳐 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랑의 좋은 열매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가지와 같다는 뜻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좋은 열매를 맺는 가지를 보시면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가지가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사랑으로 정성을 기울여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이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면, 먼저 자신의 믿음을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지처럼 바라보십시오.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말씀을 통해 들려주신 모든 것을 믿습니까? 자신의 믿음에 관하여 정기적으로 양심을 성찰하는 것은 유익합니다. 믿음은 영성 생활의 첫걸음이므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에 늘 굳게 뿌리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이는 성경과 교회의 교리 가르침을 통해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을 꾸준히 공부하고, 우리의 지성 전체로 그 가르침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는 하느님께서 성경과 교회를 통해 말씀하신 모든 것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뒤, 자신의 사랑을 살펴보십시오. 삶에서 믿음의 결실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를 볼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해, 우리는 순전히 감정적인 방식으로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우리의 기분이 아니라 믿음에 바탕을 둡니다. 사랑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어떤 사랑의 행위를 꼽을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자신을 잊고 희생하며 어떤 일을 하도록 부르신다고 느꼈습니까? 그 일을 실천했습니까?

마지막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사랑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하느님께서 바로 그곳에 가지치기를 집중하시리라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가지치기에는 아픔이 따를 수 있습니다. 희생이 필요하고, 시련 앞에서 인내해야 하며, 이기심을 이겨 내고 내키지 않는 일도 해야 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사랑의 행위조차 달갑지 않게 느껴지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우리의 동기를 가지치기하여, 감정보다 믿음에 더 바탕을 두는 순수한 동기로 다듬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이 거룩한 비유를 묵상해 보십시오. 이는 자연에서 얻는 교훈으로, 초자연적인 은총의 생명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드러내 줍니다. 하느님께서 가지치기를 하려 하실 때 주저하며 물러서지 마십시오. 고통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용서로 응답하며, 내키지 않을 때에도 자비를 베풀고, 섬김을 받을 자격이 없어 보이는 이들까지 사심 없이 섬기려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가지치기가 이루어져,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영광스럽게 세워 나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극히 영광스러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주님만이 생명에 필요한 모든 양분의 원천이십니다. 모든 좋은 것이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주님과 주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것을 굳게 믿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이 믿음이 싹을 틔우고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어, 주님의 나라를 영광스럽게 세우는 데 이바지하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영원한 영광

부활 제5주일 (다해)

유다가 그들 곁을 떠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요한 13:31–32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전부라면, 죽음이 가장 큰 원수라고 여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영원에 비하면 이 삶은 바다의 모래 한 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우리를 기다리는 영광으로 건너가는 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분명 힘든 일입니다. 또한 자신의 죽음을 마주할 때에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여러 유혹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죽음 자체를 기꺼이 겪기로 하셨다면, 우리도 죽음을 다르게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다가올 예수님의 죽음을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되시는 일로 이야기합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당신을 배반하려고 최후의 만찬 자리를 떠난 직후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배반당하고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순간을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시는 때라고 여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원한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께서 아버지께 바치실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지닐 때에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활 시기를 계속 경축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 너머에 있는 그 고난의 열매를 바라봅니다. 죽음은 패배하였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몸으로 하늘에서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임을 우리는 봅니다. 그분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는 영원히 상처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며, 그 자국은 영원히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지니고 그분께서 바라보시는 대로 우리의 인간 삶을 바라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이 삶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목표와 포부를 품고 있습니까? 당장의 즐거움과 물질적 부, 이기적인 목표와 덧없는 야망에 지나치게 마음을 쏟고 있다면, 이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일의 가르침을 묵상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해 드릴 기회로 받아들이심으로써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때에는 언제나 자연스럽고 건전한 슬픔이 따르겠지만, 하늘 나라와 영원한 영광에 대한 희망은 우리가 이 삶의 모든 것을 바라보는 눈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하느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알아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 십자가가 바로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십자가는 서로 다를 것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우리가 겪는 고통이 아니라, 희생하며 살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내어놓으라는 부르심입니다. 다른 이들을 섬기라는 부르심입니다.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모든 죄인을 사랑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비와 연민을 베풀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완전한 뜻에 응답하여 이 모든 것을 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 삶의 십자가는 가장 순수한 사랑을 실천할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를 이렇게 바라보셨으며,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이렇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죽음에 대해 묵상하되,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내어놓으라는 부르심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하십시오. 영광스러운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길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만큼, 우리는 그리스도께 주어진 영광에 참여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

사랑이 넘치시는 저의 주님, 주님께서는 죽음 자체를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시고 주님 자신도 영광스럽게 되시는 완전한 수단으로 바꾸셨나이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도와주시어,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대로 제 삶을 바라보고 제가 부름받은 영원한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의 계시를 기억하기

부활 제5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요한 14:25–26

때때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모두 잊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삶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뚜렷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강렬한 영적 깨달음을 얻거나, 강론을 통해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깊은 확신을 얻거나,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는 자유를 맛보거나, 성경을 읽으며 무언가를 더없이 명확하게 깨닫는 체험이 그러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당신의 진리와 힘, 용서와 그 밖의 온갖 은총을 베풀어 주실 때, 우리는 그분께서 가까이 계심을 느끼며 영적인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면 그렇게 또렷이 깨달았던 순간들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신 삼 년 동안 많은 것을 분명하게 깨닫는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설교에서 접한 영적 권위에 경탄했고,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으며, 죄인들이 해방되는 것을 지켜보았고,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모습을 보았으며, 주님께서 아버지와 깊은 기도에 잠기시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느님의 권능이 작용하는 것을 체험할 때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세상의 구원자이시라는 확신이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들의 믿음이 머지않아 흔들리리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매를 맞으시며 죽임을 당하시는 모습을 그들이 두려움 속에 멀리서 지켜볼 때, 이전에 체험했던 모든 것을 잊기 시작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두려움은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곧 그 함정에 빠지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곧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려오시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당신께서 그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배운 모든 가르침이 언제나 우리 삶의 중심에 생생히 머물러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두려움 때문에 혼란에 빠져, 하느님께서 여러 방식으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잊어버리는 일이 전혀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억하기 위해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아셨듯이, 우리에게도 성령의 같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과거에 배운 신앙의 가르침 가운데 다시 떠올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가르침을 필요로 할 때마다 떠올리게 해 주시는 것이 성령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성령 강림 대축일이 다가오는 지금은 성령께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여러 방식을 기억하는 은총을 청하기에 좋은 때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일하시지만, 우리 삶 안에서 각기 고유한 역할을 하십니다. 성령의 역할은 특히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위격에 완전히 일치하게 되기를 바라시는 성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날마다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과 우리에게 하신 이 힘 있는 약속을 묵상해 보십시오. 성령께 기도하십시오.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끌어 주시는 성령께 마음을 열고, 두려움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십시오. 오히려 하느님께서 모든 혼란을 걷어 주시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하신 모든 말씀을 떠올리게 해 주시도록 마음을 내어 드리십시오.

지극히 영광스러우신 주 예수님,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주님의 온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주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것을 저희에게 기억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나이다. 성령님, 끊임없이 제 위에 내려오시어 저를 가르치시고 이끌어 주소서. 제가 배운 수많은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도록 도우시어, 두려움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요한 14:27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겉보기의 평화와 어떻게 다릅니까? 우리는 모두 삶에서 평화를 원합니다. 내적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 본성 자체에 새겨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면의 무질서와 심지어 혼란으로 이어지는 선택을 하지만, 그런 선택은 무엇이 참으로 충만함을 주는지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마약이나 술에 대한 중독을 부추기는 선택을 하는 이들은 흔히 행복을 향한 잘못된 갈망에서 그 중독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시적으로 욕구를 채우면 잠시나마 평안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이런 행동으로 얻는 일시적인 ‘평화’가 결국 자신이 갈망하는 바로 그것을 잃게 한다는 사실은 매우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중독으로 굳어지면, 그 사람은 흔히 점점 더 깊은 악순환에 갇히게 됩니다.

이 밖에도 사람들이 삶에서 만족과 충만함을 찾으려 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습니다. 돈을 좇는 일, 문란한 성생활, 부정행위, 이기적인 행동, 분노, 기만 등은 모두 어떤 만족을 얻으려는 의도에서 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처럼 우리를 속이는 행동의 가면을 벗겨, 그 실체와 그 행동이 맺는 열매를 알아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행동들은 분명 ‘세상’이 우리에게 평화를 제시하는 여러 방식에 속합니다.

삶의 참된 행복에 관하여 말하자면, 참된 내적 평화의 선물은 우리가 올바른 길을 걷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표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루하루 하느님의 뜻을 선택할 때, 그 선택은 어려울 수 있고 처음에는 많은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도덕법에 충실하게 사는 일도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죄를 거부하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하루의 모든 순간에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면, 우리 안에는 위로와 지탱할 힘을 주는 그리스도의 평화라는 선물이 생겨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참된 평화는 힘을 낳습니다. 내면을 한결같고 온전하게 해 줍니다. 생각을 맑게 하고 신념에 확신을 더해 줍니다. 하느님의 평화는 더 큰 평화로 이어집니다. 또한 깊이 숙고한 사랑의 실천에 바탕을 둔 선택으로 이끌어 줍니다. 평화는 우리를 하느님의 뜻으로 이끌고, 하느님의 뜻은 평화로 이끕니다. 이 선순환의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삶의 행복으로 이끄는 가장 분명한 길잡이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오늘, 마음속에 참으로 평화가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영혼 안에서 고요하면서도 힘 있게 우리를 지탱해 주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봅니까? 날마다 내리는 선택이 마음을 더욱 한결같게 하고 정신을 더욱 맑게 해 줍니까? 삶의 가장 큰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평온을 누리고 있습니까? 이 평화를 찾으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마음속에 이 영광스러운 선물을 이루어 주시는 선하신 하느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참된 평화의 주님, 제 삶의 모든 갈망을 가장 깊이 채워 주는 유일한 길은 주님과 주님의 거룩한 뜻뿐이옵니다. 제가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는 그릇된 선택을 할 때, 온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서도록 도와주소서. 저를 괴롭히는 모든 속임수의 실체를 드러내 주시고, 오직 주님과 주님의 평화만을 찾는 데 필요한 힘을 주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그리스도와 굳게 결합되어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요한 15:5

이 구절에서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놀라운 점은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좋은 열매를 맺어 주고자 하신다는 단순한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은총과 자비를 세상에 베풀고자 하십니다. 포도나무는 홀로 열매를 맺지 않고 가지를 통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에,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당신의 은총과 자비를 베풀기로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이 거룩한 사명을 더욱 분명하게 밝혀 주시려고 예수님께서는 매우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아무것도’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묵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덧붙이신 까닭이, 우리 스스로는,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좋은 열매를 ‘조금’도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시려는 것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사과나무에서 잔가지를 잘라 놓고 그 가지에 사과가 열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맺고자 하시는 열매는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도 성령의 열매라는 모습으로 맺힙니다. 이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티아 5:22–23 참조).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 선물 하나하나는 여러분을 이 세상에서 하느님 자신의 모습을 더욱 온전히 드러내는 사람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성령의 열매 하나하나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것이나 참으로 간절히 바랄 만합니다. 이 열매들을 바라는 마음이 자라날수록, 삶 속에서 성령을 갈망하는 마음도 자라날 것입니다.

위에서 인용한 복음 구절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경우 성령의 열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체험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집니다. 하느님과 굳게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사랑도 기쁨도 인내도 친절도, 그 밖의 어떤 열매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와 굳게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좋은 열매들을 적극적으로 갈망하는 마음과 더불어, 그 열매들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거룩한 마음을 기르는 것은 유익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포도나무와 가지의 아름답고 뜻깊은 비유를 묵상해 보십시오. 포도나무를 떠올린 다음, 그 포도나무에 굳게 붙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또 우리를 통하여 큰일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온 마음으로 그분께 꼭 붙어 있기만 한다면, 좋은 열매가 풍성히 맺힐 것입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주님께서는 모든 선의 근원이시며, 저는 주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나이다. 제 삶에 주님께서 얼마나 절실히 필요하신지 언제나 기억하고, 늘 주님께 꼭 붙어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삶 안에 좋은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하시고, 저를 통하여 세상에도 풍성히 맺히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순종의 좋은 열매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요한 15:10

예수님께서는 위의 말씀에 이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두 말씀을 나란히 놓고 보면, 예수님께 거룩하게 순종하는 것에 관한 그분의 가르침을 하나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말씀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부담스럽고, 독단적이며, 억압적이고, 자유를 옭아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이어지는 말씀을 읽어 보면 그 답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르게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또한 당신께서도 기꺼이 하려 하지 않으셨던 일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며 아버지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명령을, 그분께서 자유로이 순종을 선택하고 몸소 실천하신 데서 흘러나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당신의 인성으로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온전히 충만한 상태에 머무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완전한 순종을 본받을 때, 기쁨도 “충만하게” 누리게 됩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하느님의 뜻에 대한 거룩한 순종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십계명의 각 계명을 예로 들어 보십시오. 그 계명들에 흔들림 없이 순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 계명들을 참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억압적이고 강요된 제약으로 느끼십니까? 올바로 이해한다면, 십계명과 하느님의 뜻에서 나오는 다른 모든 명령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며, 그뿐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깊이 갈망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혼돈이 아니라 내면의 질서를 원합니다. 나약함이 아니라 온전함을 원합니다. 슬픔이 아니라 기쁨을 원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깊이 갈망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길은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른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거룩한 순종을 대할 때 마음속에서 곧바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든다면, 그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이 가르침이 더 필요하다는 분명한 표지입니다. 진리의 빛 안에서 순종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십시오. 영혼 깊은 곳에서는 순종과 그 순종이 가져오는 내적 질서를 갈망하고 있음을 깨닫도록 노력하십시오. 특히 순종하기 어려워하는 부분들을 살펴보고, 우리 주님의 모든 명령 하나하나에 흔들림 없이 순종하겠다고 다시 굳게 다짐하십시오.

순종하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나이다. 이 순종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인성 안에서 아버지의 충만한 사랑과 기쁨을 누리셨을 뿐 아니라, 저희에게 성덕의 완전한 모범과 본보기도 보여 주셨나이다. 제 삶에서 더욱 순종해야 할 부분을 깨닫도록 도우시어, 저도 주님과 아버지의 거룩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참된 우정

부활 제5주간 금요일

“너희는 내가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한 15:14–15

어떤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우정의 정의가 언뜻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우리가 실천할 때에만 당신의 친구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도 그 친구는 웃으며 어리석은 말이라 치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우정은 언제나 순종을 바탕으로 하는 것일까요?

친구들이 자신의 우정을 얻으려면 자기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기대가 참된 우정의 바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만이 당신의 거룩한 뜻에 대한 순종을 당신과 맺는 우정의 바탕으로 삼으실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순수한 진리이십니다. 그분께서 바라시는 것은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실천해야만 그분의 친구가 된다는 말씀은 우정이 진리에 바탕을 둔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정은 사랑과 선함, 친절, 사심 없는 희생과 자기 증여에 바탕을 둡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바로 이 모든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그분과 맺기를 바라는 우정으로 나아가는 길은 오직 그분의 뜻에만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른 이들과 맺는 우정에서, 모든 참된 우정은 오직 하느님께서 친구들을 위해 바라시는 것에 바탕을 둘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정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록 “명령”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오직 진리 위에 우정을 쌓으려 한다는 뜻입니다. 사심 없이 희생하고 자신을 내어 주는 자비와 연민, 정직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관계만을 나누려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우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먼저 하느님과의 우정을 돌아보고, 이어서 다른 이들과의 우정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명하시는 방식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다른 이들과의 우정을 돌아보면서, 그 우정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관계인지도 살펴보십시오. 참된 사랑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우정은 영원토록 깊은 충만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하느님이신 저의 주님, 주님께서는 오직 순수하고 거룩한 사랑이 요구하는 바에 바탕을 둔 우정으로 저를 부르십니다. 이 사랑의 계명에 감사드리며, 주님의 초대를 받아들입니다. 주님, 사랑의 진리에 따라 주님과의 우정을 끊임없이 깊게 하고, 저의 모든 우정이 오직 이 거룩한 사랑의 계명에 바탕을 두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세상의 미움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요한 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이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씀입니다. 곧, 만일 여러분이 주님께서 세상에서 밖으로 불러내신 이들 가운데 속한다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런 경우에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미움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의 분노나 박해, 공격이나 조롱을 겪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증오는 추하고 고통스러우며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증오가 지닌 본질의 일부입니다. 증오는 박해의 한 형태일 뿐 아니라, 다른 이를 조종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증오는 다른 이를 공격하는 것으로, 미워하는 사람은 이를 통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를 조종하여 자기 뜻에 맞게 바꾸려 합니다. 세속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인 ‘세상’은 우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가르침을 주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세상의 미움을 받더라도 그에 흔들리거나 조종당하여 당신에게서 돌아서지 않도록 준비시켜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주님의 크나큰 자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의 세 원수에 관하여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바로 육신과 마귀와 세상입니다. 이 복음 구절에서 ‘세상에 속한다’는 것은 세상에 깃든 수많은 거짓에 스스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도록 내버려 둔다는 뜻입니다. 세속적인 대중 매체, 대중문화, 편향된 의견, 사회적 압력, 행복에 관한 그릇된 이미지 등은 끊임없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끌어들이려 합니다. 우리는 돈이나 외모, 자신이 이룬 일에 대한 인정, 그 밖의 여러 가지에서 충만함을 찾을 수 있다고 믿으려는 유혹을 자주 받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의견이 이 시대의 세속적 가치관에 맞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편협한 극단주의자이므로 배척받고 ‘퇴출’당하거나 침묵을 강요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세속의 유혹과 압력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바로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신앙을 실천할 때 겪게 될 조종과 속임수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우리는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을 때에도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오늘은 힘과 위로를 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세상으로부터 어떤 형태의 미움도 받지 않는다면, 이를 염려하며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반대로 어떤 형태로든 미움을 받고 있다면, 주님께서 이에 대비하도록 준비시켜 주셨으며 기쁨으로 견딜 수 있도록 당신의 힘과 용기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결국 중요한 것은 오직 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하는 것뿐이며, 그 밖의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세상으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미움을 받는다면, 그로써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 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박해받으신 저의 주님, 주님께서는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에 사로잡힌 수많은 이들의 증오와 조롱을 견디셨습니다. 저도 주님의 사랑과 자비의 삶에 동참할 뿐 아니라, 세상의 미움을 견뎌야 할 때 주님의 힘에도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저 자신을 주님께 맡겨 드리오니, 끊임없이 저를 세상에서 이끌어 내시어 주님 가까이 데려가 주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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