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계약은 이로써 남자와 여자가 서로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것으로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행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며, 영세자들 사이에서는 주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사의 품위로 올려졌다”( 교회법, 제1055조 § 1; 사목 헌장 48항 § 1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01)
혼인은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안정된 제도가 되도록 마련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혼인은 삶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충만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에게는 혼인이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 장에서는 하느님의 계획과 관점에서 혼인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교 혼인은 부부에게 높은 이상을 제시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모든 선물과 마찬가지로 이 이상을 실현하려면 이해와 사랑, 인내가 필요합니다. 먼저 하느님의 본래 뜻과 계획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혼인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뜻
혼인에 관한 첫 번째이자 가장 놀라운 사실은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바로 그 처음부터 혼인을 제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혼인은 자연 질서의 일부입니다. 이는 혼인이 다른 성사들과 달리 성사들보다 앞서 존재했다는 뜻입니다. 혼인은 ‘자연 질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친교를 이루도록 뜻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창세 1:27–28)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창세 2:20–25)
이 성경 구절들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위하여, 혼인 안에서 하나로 결합하도록 창조되었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본래 계획에 속하는 혼인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자연 질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과 닮은 꼴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드러내 주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인간에게 사랑하고 일치를 이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이에게 자신을 내어 주고, 다른 이를 받아들이며, 알아 가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호 간의 사랑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은 부부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중요한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부부도 생명을 주는 방식으로 혼인의 열매를 맺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생명을 주는’ 사랑은 여러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지만, 언제나 서로 나누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창세기는 부부가 ‘한 몸이 되도록’ 부름받았음을 드러냅니다. 이 하나 됨은 부부에게도,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녀들에게도, 나아가 온 사회에도 힘과 안정의 원천이 됩니다. 혼인의 일치는 모든 사회를 이루는 근본 토대 가운데 하나입니다.
타락의 영향
혼인은 하느님의 본래 계획의 일부였으므로, 인류의 첫 조상이 죄를 짓고 하느님에게서 돌아섰을 때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혼인 자체도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죄의 결과로 온갖 무질서가 갑자기 부부 생활에 들어왔습니다. 인류는 혼인 안에 “불화, 지배욕, 불충실, 질투, 갈등”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06).
타락의 결과로 생겨난 혼인의 어려움은 분명합니다. 부부 생활의 이상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으며, 그러려면 사랑과 헌신을 끊임없이 깊게 해 나가야 합니다. 죄와 상처, 과거의 기억, 격정과 무질서는 모두 자연적인 혼인 유대를 위협하며, 부부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랑과 일치, 풍성한 결실이라는 영광스러운 소명을 살아가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고, 혼인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해답을 지니고 계시며, 이 자연적인 제도가 완성에 이를 수 있도록 그 해답을 주십니다.
하느님의 응답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이 미친 영향을 보시고, 이에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영광스러운 계획을 마련하셨습니다. 이 계획은 성자의 희생으로 주어지는 은총을 통하여 인류를 하느님과의 새로운 차원의 친교로 회복시키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이 계획은 혼인을 하느님께서 본래 인류를 위해 뜻하셨던 자연적 선으로 이해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인류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약은 일종의 약정으로 볼 수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 높여진 약정입니다. 단순히 약속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당신과의 새로운 결합으로, 곧 구약에서 하신 것처럼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탈출 6:7)고 말씀하시는 새로운 관계로 초대하십니다. 구약에서 당신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신 데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충실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이 새로운 계약에 언제나 충실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들의 죄는 하느님과 맺은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 계약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언서에서 이 계약은 율법을 넘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내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에제키엘서 11:19–20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다른 마음을 주고 그들 안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겠다. 그들의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어, 그들이 나의 규정을 따르고 나의 법규를 성실히 지키게 하겠다. 그러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이 새 계약은 하느님 아드님의 강생과 십자가 위에서 당신 생명을 바치신 희생을 통하여 맺어질 것이었습니다. 먼저, 성자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인간 본성을 취하심으로써 인간 본성을 회복시키시고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 높이십니다. 인류는 이제 말하자면 ‘신화’된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창조 때 맺어진 본래의 유대보다 더 위대한 새로운 유대가 맺어졌습니다.
이 새로운 유대가 가능해진 것은 또한 성자 하느님께서 인간 본성을 취하신 뒤 당신의 죽음으로 죄와 죽음을 물리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죄의 결과인 죽음 속으로 들어가셨다가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심으로써 죄와 죽음을 물리치셨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인간 본성을 회복시키시고 부활의 새로운 상태로 들어 높이십니다. 이 새로운 생명 덕분에 이제 인류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자신들 안에 살아 계시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롭고도 우리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그분과 혼인의 결합을 이룹니다.
이 유대는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의 친밀한 일치를 이루는 혼인, 곧 새로운 혼인 계약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랑이 되시고, 그분의 백성인 교회는 신부가 됩니다. 이 새 계약, 곧 하느님과 맺는 새로운 혼인은 각 사람에게 하느님과 내적으로 일치하는 데 동의하도록 초대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마음은 모든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서 사십니다.
이러한 새 계약의 실재는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의 토대일 뿐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혼인은 순전히 자연적 제도로만 남아서는 구원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타락한 인간 본성 전체를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 높이십니다. 여기에는 자연 질서에 속한 혼인을 초자연적 차원인 성사로 들어 높이시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제 혼인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지닌 영적 힘이 부여됩니다. 이 자연적 유대는 은총으로 들어 높여져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새 계약에 참여하게 됩니다. 사랑이 넘치시는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펼치신 계획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경이롭습니다!
새 계약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의 혼인
세례받은 두 사람이 혼인 계약을 맺으면, 그 혼인은 그 자체로 성사의 차원으로 들어 높여집니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성사로서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고 부부에게 새롭고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부부를 새로운 차원의 자기 증여와 책임으로 부릅니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효과와 좋은 열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일치: 우리 모두의 내면에 일치를 바라는 열망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인간인 우리는 일치를 이루도록, 서로 깊은 인격적 친교를 나누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치를 향한 마음속 갈망은 지울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둘이 하나가 되도록” 매우 깊고 고유한 일치를 나누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혼인 안에서 그 일치를 충실히 살아갈 때, 혼인은 인간으로서 가장 큰 충만함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물론 혼인 생활의 불화는 큰 상처를 낳습니다. 우리 마음의 자연스러운 갈망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타락의 결과로, 남자와 여자는 혼인 안에서 일치를 이루라는 이 자연적 부르심을 살아낼 수 없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혼인을 은총의 새 계약 안으로 받아들이시어, 이 자연적 제도에 초자연적 은총을 부어 주심으로써 새로운 힘을 베푸십니다. 이제 부부는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얻어,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누시는 일치와 온 교회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혼인은 성사가 되어 이 새로운 은총에 참여하며, 그 가장 큰 은혜 가운데 하나로 일치를 누립니다.
물론 그리스도인 생활의 다른 모든 측면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부는 이 새로운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일치를 살아가려면 남편과 아내 모두가 자신들의 혼인 안에서 새 계약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불가해소성: 성사인 혼인은 영구하고 지속적인 일치를 이룹니다. 하느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시면 그 약속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영속성은 부부가 삶에 필요한 안정을 얻는 데 꼭 필요한 토대가 되며, 하느님께서 부부에게 자녀의 복을 주실 경우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바탕도 마련해 줍니다.
불가해소성이란 말 그대로 풀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를 피해 갈 길은 없습니다. 유효하게 맺어진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해소될 수 없습니다. 그 혼인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이는 유효하게 혼인한 부부가 민법상 이혼을 하더라도 교회는 여전히 그들을 부부로 여기며, 실제로도 그들이 여전히 부부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이 유대는 끊어질 수 없습니다.
이쯤에서 혼인 무효 선언에 관해, 그리고 가톨릭교회에서 혼인한 뒤 결국 이혼하고 교회에서 혼인 무효 선언을 받아 다시 가톨릭교회 안에서 혼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관해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 장의 뒷부분에 있는 ‘혼인 합의’ 항목에서 다룰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두 사람이 유효한 그리스도인의 혼인을 맺으면 그 유대는 끊어질 수 없다는 점을 알아 두십시오.
신의: 신의란 부부가 부부 사랑에서 오직 서로에게만 자신을 바치기로 약속하는 것을 뜻합니다. 신의는 성적 관계 자체의 본성에 내재합니다. 성적 사랑은 일치와 출산을 목적으로 존재합니다. 출산은 혼인이라는 헌신적이고 영구적인 관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자녀들이 태어나고 양육되도록 뜻하신 사랑의 환경입니다.
그러나 성행위는 부부 사이에 깊은 일치도 이루어 줍니다. 사실 혼인 서약과 더불어 혼인 계약을 확고히 하고 영구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행위입니다. 이 행위 안에서 두 사람은 한 몸이 됩니다. 그러므로 부부 사랑은 그 본성상 영적인 것이기도 하며, 강력한 영적 유대를 이루어 줍니다. 이 유대는 평생 지속되는 영구적인 혼인 계약 안에서만 실천되고 체험되어야 합니다.
부부의 신의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지니신 바로 그 신의에도 참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보여 주시는 흔들림 없는 신의를 세상에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와 맺으신 새 계약은 부부가 지키는 신의의 원천입니다. 그렇기에 혼인은 하느님의 사랑과 헌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표징이 됩니다.
새 생명에 대한 개방성: 부부가 하는 본질적인 약속 가운데 하나는 새 생명을 향해 마음을 열어 두는 것입니다. 이는 특히 자녀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뜻합니다. 물론 나이나 다른 요인 때문에 모든 부부가 자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핵심은 열린 마음입니다. 또한 이것이 부부가 하는 ‘본질적인’ 약속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질적인 약속이기에, 부부가 자녀를 가질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면 그들은 실제로 혼인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혼인 합의에 관한 부분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성덕의 길에서 서로 돕기: 하느님께서 혼인을 마련하신 것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기로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혼인에서 배우자는 구원의 길을 함께 걸으며 서로에게 참된 협력자가 됩니다. 좋은 때나 나쁜 때나 언제나 서로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부부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부부는 한결같고 믿음직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자비를 베풀며 모든 면에서 사랑을 실천합니다.
배우자는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수많은 방식으로 서로의 ‘협력자’가 됩니다. 날마다 집안일을 함께하고, 살림을 공동으로 꾸려 나가며, 정서적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인간 삶의 모든 평범한 순간에 함께합니다. 그러나 배우자가 서로를 돕는 여러 방식 가운데 성덕을 향한 협력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부부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데에서 서로를 꾸준히 도와야 합니다. 서로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더 나아가도록 서로를 북돋우며, 각자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도록 서로를 일깨우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함께 체험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이상적으로는 함께 기도하고 서로에게 자신의 신앙을 증언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쪽 배우자가 다른 쪽보다 훨씬 더 충만하게 신앙을 실천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신앙에 충실한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천국으로 이끄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하느님 은총의 도구가 됩니다.
상호 순종: 타락한 인간 본성 안에 있는 한 가지 성향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성향과 씨름합니다. 우리는 주도권을 쥐고 삶의 결정을 내리려 하며, 흔히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지배하려는 이 성향은 타락의 결과이며 죄스러운 것입니다. 특히 지배가 부부 관계 안에 들어올 때 더욱 그렇습니다. 역사 전반에 걸쳐 많은 문화권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려는 경향이 주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문화권에서 여성을 이등 시민으로 취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들 역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남편을 지배하려 하면서 똑같은 함정에 빠집니다. 이 성향은 흔히 주로 감정을 극단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지배하려는 이 성향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든 해결책은 같습니다. 그 해결책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존엄과 각자가 혼인 생활에 가져오는 고유한 여성적·남성적 역할을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여러 면에서 분명히 다르며, 이는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고유한 선물은 혼인 안에서 실현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참된 남성성은 지배적이지 않으며, 참된 여성성 또한 그렇습니다. 오히려 상호 순종이란 각 배우자가 자신의 본성에 맞게 상대에게 순종하고, 상대를 최대한 존중하며 존엄하게 대하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상호 순종이 이루어지면, 어느 쪽 배우자도 다른 쪽이 혼인 안에서 자신의 남성적 또는 여성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맡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이 혼인 생활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수는 있지만, 반드시 먼저 아내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을 두 사람의 공동 지침으로 삼은 뒤에만 그래야 합니다. 이 경우 아내는 남편에게서 온전한 존중을 받고 있음을 체험하므로 남편이 가정의 머리가 되도록 맡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아내가 지닌 여성적 마음의 선물은 남편을 이끄는 빛이 됩니다.
부부는 타고난 선물과 역할에 맞게 사랑과 상호 순종을 실천하도록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길을 발견하고자 날마다 힘써야 합니다. 이는 실천하기 어렵지만, 모든 훌륭하고 거룩한 혼인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혼인성사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어 함께 행동하며 이러한 상호 보완성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줄 것입니다.
혼인 합의
새 계약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교 혼인에 관하여 이처럼 설명했으니, 이제 혼인 합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합의로 혼인성사가 실제로 성립하며, 혼인의 놀라운 열매와 효과가 생겨납니다. 합의는 전적이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강요, 두려움, 조종, 압박 등은 합의의 효력을 훼손하며, 따라서 혼인 자체도 훼손합니다. 반면에 자유롭고 전적인 합의는 이 책의 앞 절에서 설명한 혼인의 놀라운 열매를 맺습니다. 영구히 지속되는 혼인이 합의를 통하여 성립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합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자유로운 합의: 혼인 당사자들이 하는 합의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자유로운 합의란 혼인을 결정할 때 어느 한쪽에게도 지나친 압박을 가하는 요소가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두 사람은 온전한 판단력을 지니고, 자신들이 하는 서약의 중대함을 충분히 이해하며, 전적으로 자유로운 의지의 결정에 따라 그 서약을 해야 합니다. 자유를 훼손하는 요인으로는 압박, 조종, 두려움, 미성숙, 약물 중독이나 알코올 의존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른바 ‘임신 때문에 떠밀려 하는 결혼’은 자유로운 합의에 닥칠 수 있는 실제적인 위험을 보여 줍니다. 혼인하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 임신이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갑자기 한쪽이나 양쪽 모두 결혼해야 한다는 큰 압박을 느낍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올바른 이유로 혼인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쪽이나 양쪽 모두 ‘해야 하니까’ 결혼하기로 결정한다면 문제가 됩니다. 압박감 때문에 혼인을 선택하면 혼인 자체가 훼손되며, 실제로 혼인이 무효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곧 혼인 유대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혼인을 선택할 때 자유가 결여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는 미성숙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처음 느끼는 매우 강렬한 연애 감정 때문에 서둘러 결혼하기로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두 사람은 무척 어리고 미성숙하여 자신들이 하는 서약이 얼마나 깊은 책임을 수반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들의 미성숙과 감정이 혼인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능력을 흐릴 수 있습니다.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된 상태에서 혼인하려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한 중독은 명료하게 사고하는 능력을 크게 저해하여, 혼인 유대가 성립하는 데 필요한 수준의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전적인 합의: 혼인하려는 두 사람의 자유로운 합의는 또한 전적이어야 합니다. 이는 혼인에 따르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며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두 사람은 세 가지를 온전히 지향해야 합니다. 1) 충실성, 2) 영속성, 3) 자녀 출산에 대한 개방성입니다. 혼인의 이 세 가지 ‘목적’은 본질적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혼인 서약을 할 때에는 혼인의 이 세 가지 목적에 온전히 열려 있겠다는 내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전적인 합의가 결여된 분명한 예로는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나이의 두 사람이 자녀를 전혀 갖지 않기로 미리 합의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자녀를 가질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선택은 실제로 혼인 유대의 성립을 배제합니다. 이 경우에는 혼인의 세 가지 본질적 목적 가운데 하나를 배제하려는 의도로 말미암아 혼인 자체를 거스르는 의도가 있게 됩니다.
혼인 무효 선언: 때로는 혼인 생활이 파탄에 이르러 민법상 이혼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이 경우 두 사람은 혼인의 목적에 관한 우리의 신앙과 가르침에 비추어 자신들의 혼인 유대를 교회가 심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절차를 혼인 무효 선언 절차라고 합니다.
혼인 무효 선언은 이혼을 겪은 두 사람에게 큰 치유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혼인 무효 선언 절차의 목적은 진리에 비추어 혼인 유대를 살펴보는 것이기에 치유가 됩니다. 합의의 전적인 성격과 자유, 그리고 혼인의 세 가지 목적이 어떤 의미에서는 심판대에 오르는 것입니다. 혼인 유대가 실제로 성립했습니까, 아니면 성립하지 않았습니까? 혼인이 시작될 때부터 본질적인 무엇인가가 빠져 있었습니까? 이러한 물음은 우리의 신앙과 혼인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검토되어야 합니다. 혼인 무효 선언 절차에서는 이혼한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이나 두 사람 모두가 교회에 개입을 요청하여 혼인 유대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을 청합니다. 이 과정을 겪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결국에는 거의 언제나 치유로 이어집니다. 교회가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문제를 정리하도록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당사자들이 알기 때문에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혼인 유대를 철저히 검토한 뒤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판결을 내립니다. 곧 혼인 유대가 존재한다고 선언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혼인 무효 판결이 내려집니다. 이는 혼인이 시작될 때부터 합의에 본질적인 무엇인가가 빠져 있었다고 교회가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혼인 유대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사자들은 여전히 혼인할 자유가 있으며, 가톨릭교회 안에서 혼인할 수 있습니다.
혼인 무효 선언은 가톨릭식 이혼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유효하게 혼인한 두 사람을 갈라놓을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혼인 무효 선언은 혼인 유대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분명히 밝히려는 것일 뿐입니다.
성사인가, 아닌가
혼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혼인의 유형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혼인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분은 성사인지 아닌지에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가톨릭 신자 두 사람의 혼인, 가톨릭 신자와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의 혼인, 비가톨릭 그리스도인 두 사람의 혼인도 살펴보겠습니다.
자연 질서에 속하는 혼인: 이 장의 앞부분에서 설명했듯이, 혼인은 하느님의 본래 뜻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자연 질서에 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 모두 세례를 받은 부부의 혼인을 은총의 질서로 들어 높이시어 성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나 두 사람 모두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그 혼인은 성사는 아니지만 여전히 자연 질서에 속하는 혼인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자연 질서에 속하는 혼인에서도, 이 장의 앞부분에서 설명했듯이 두 사람의 자유로운 동의로 유대가 맺어집니다. 이 동의 역시 자유롭고 전적인 것이어야 하며, 혼인의 세 가지 목적을 모두 포함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사가 아니라 자연 질서에 속한다는 것은 단지 그 혼인에 성사적 은총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성사 고유의 은총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일 뿐입니다. 바람직하게는 그러한 혼인에서도 하느님을 모셔 들여야 하며, 하느님의 사랑이 부부의 혼인 생활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훗날 두 사람 모두 세례를 받게 되면, 그 자연적 혼인 유대는 저절로 성사의 차원으로 들어 높여집니다. 세례성사는 성사 생활로 들어가는 관문이므로, 혼인도 이 성사적 은총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성사로서의 혼인: 두 사람 모두 세례를 받았다면, 그들의 혼인은 저절로 성사가 됩니다. 이는 두 가톨릭 신자 사이의 혼인이나, 가톨릭 신자와 비가톨릭 그리스도인 사이의 혼인, 또는 두 비가톨릭 그리스도인 사이의 혼인에 모두 해당합니다. 사실 두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이 치안 판사 앞에서 혼인을 하더라도, 그들의 혼인은 여전히 성사입니다. 교회는 가톨릭 신자에게만 가톨릭 예식에 따라 교회 안에서 혼인 서약을 받아들이도록 규정합니다. 그 밖의 모든 혼인은 동의가 자유롭고 전적인 것이라면 혼인 제도에 따른 혼인으로 인정됩니다.
가정 교회
혼인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강조할 점은, 혼인이 성사로서 ‘가정 교회’를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이 거룩함과 일치의 자리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가정은 교회와 사회 전체를 이루는 기초 단위입니다.
가정 안에서 자녀들은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고, 부부는 힘을 얻으며, 친척들은 소속감을 느끼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가정은 하느님께서 주신 참된 선물이며, 하느님의 현존과 우리를 지탱해 주는 은총의 참된 원천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가정 교회인 가정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그 품을 모든 이에게 넓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가정이 없는 독신자들도 사람들의 가정 안에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의 유일한 거룩한 가족에 속할 뿐 아니라, 개별 가정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가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각각의 가정에도 속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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