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많은 페이지는 이 땅에서는 결코 읽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거듭 되새기며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는 드러내어서는 안 되는 고통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장막이 걷히고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될 때 그 고통의 공로와 영광을 드러내실 권리를 오직 당신께만 남겨 두셨습니다. 데레사는 수도 서원을 하던 날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제게 영혼의 순교나 육신의 순교를 허락해 주소서. . . . 아니, 차라리 둘 다 허락해 주소서!” 데레사 자신이 고백했듯이, 그의 모든 소망을 이루어 주신 주님께서는 이 소망도 들어주셨고, 다른 어떤 소망보다도 더욱 풍성하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성심 안에 갇혀 있던 무한한 다정함의 물결이 당신의 작은 정배의 영혼 안으로 넘쳐흐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데레사가 아름다운 노래로 그토록 잘 묘사한 “사랑의 순교”였습니다. 그러나 데레사 자신이 가르친 바는 이러했습니다. “사랑의 희생 제물로 자신을 바친다는 것은 감미로움과 위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쓰라린 모든 것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직 희생으로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 . . 그리고 사랑에 자신을 더 온전히 내어 맡기려 할수록, 고통에도 자신을 더 온전히 내어 맡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데레사가 “사랑의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기를 갈망했기에,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험난한 슬픔의 길을 따라 그를 그곳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데레사는 그 황량한 정상에 이르러서야 사랑의 희생 제물로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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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데레사가 행복한 가정과 자신을 그토록 다정하게 사랑하던 아버지를 떠나며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보았습니다. 가르멜에서 끔찍이 사랑하는 두 언니를 다시 만났으니 그 희생이 조금은 가벼워졌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일은 젊은 지원자인 데레사에게 타고난 강한 애정을 억제할 기회를 여러 차례 주었습니다. 고독과 침묵의 규칙이 엄격히 지켜졌기에, 데레사는 공동 휴식 시간에만 언니들을 만났습니다. 극기에 덜 충실했다면 자주 언니들 곁에 앉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수녀들과 어울리기를 더 좋아했으며”, 아무도 데레사가 친언니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입회한 지 얼마 뒤, 데레사는 사랑하는 “폴린” 언니인 예수의 아녜스 수녀의 “보조”로 임명되었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희생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데레사는 불필요한 대화는 모두 금지되어 있음을 알았기에, 단 한마디도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저의 작은 어머니, 제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어머니께 제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없었고, 어머니께서 더는 저를 알지 못하신다고 생각했어요!”
이처럼 영웅적인 침묵 속에서 5년을 보낸 뒤, 예수의 아녜스 수녀가 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선거가 있던 날 저녁, 데레사는 이제부터 “작은 어머니”에게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예전처럼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할 법도 했습니다. 그러나 희생은 이미 그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다른 어떤 은혜보다 더 바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낮고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수녀 가운데 원장 수녀를 데레사보다 드물게 만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데레사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요구한 온전한 완덕으로 가르멜의 삶을 살고자 했으며, 늘 영적 메마름으로 순교하듯 고통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한 번은 어느 수련 수녀가 데레사의 방에 들어갔다가 그 얼굴에 어린 천상적인 표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데레사는 부지런히 바느질을 하고 있었지만, 깊은 관상에 잠긴 듯 보였습니다. 젊은 수녀가 물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데레사가 대답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묵상하고 있어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감미로운지요!” . . . 그의 눈에 눈물이 반짝였습니다. 또 한 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에서 제가 지금보다 무엇을 더 누리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하느님을 뵙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라면, 저는 이미 이 땅에서도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하느님 사랑의 불꽃이 데레사를 불살랐습니다. 데레사 자신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저 자신을 봉헌한 지 며칠 뒤, 저는 성가대석에서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불타는 화살에 꿰찔리는 것을 느꼈는데, 그 불길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 황홀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불꽃의 강렬함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저를 온통 불 속에 밀어 넣는 듯했습니다. . . . 그러나 아, 그 불길은 어떠했는지요! 그 감미로움은 또 어떠했는지요!”
원장 수녀가 이런 황홀경을 겪은 것이 처음인지 묻자, 데레사는 꾸밈없이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사랑의 황홀경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특히 수련기에는 한 주 내내 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지낸 적이 있습니다. 지상의 모든 것 위로 장막이 드리워진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실제 불에 타듯 불살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를 이 땅에 붙들어 매는 끈이 끊어지리라는 생각 없이도 그런 사랑의 황홀경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드리는 그날에는 일 분만, 아니 일 초만 더 지났더라면 제 영혼은 틀림없이 풀려났을 것입니다. 아아! 저는 다시 이 땅에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고, 곧바로 제 마음에 메마름이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손이 불타는 화살을 거두어 가셨지만, 그 상처는 죽음에 이르는 상처였습니다!
하느님과 그토록 긴밀히 일치하는 가운데, 데레사는 놀라운 자기 절제의 힘을 얻었습니다. 그의 영혼이라는 정원에는 온갖 아름다운 덕이 무성하게 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경이로운 꽃들이 그의 노력 없이 자라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육체의 고통이든, 남모르는 슬픔이든, 때로는 하느님만이 아시는 시련이든, 고통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인들의 생애를 읽고 우리 영혼 안에 좋은 생각과 너그러운 결심이 솟아났다면, 세속의 책을 읽을 때처럼 저자의 재능에 어느 정도 찬탄을 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루어 낸 초자연적 선을 위하여 틀림없이 치렀을 대가를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1]
그리고 오늘날 데레사가 그토록 많은 이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이 땅에서 이루는 선을 헤아릴 수 없다면, 데레사 역시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을 되찾으시고자 치르신 바로 그 대가, 곧 고통과 십자가로 그 모든 것을 얻었다고 우리는 충분히 믿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 결코 작지 않은 것은 자신과 끊임없이 벌인 싸움이었습니다. 데레사는 타고난 도도하고 성급한 기질의 요구를 조금도 채워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결코 자신을 변명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습관을 들였고, 가르멜에서는 함께 사는 수녀들의 작은 종이 되려고 힘썼으며, 그와 같은 겸손의 정신으로 누구에게나 구별 없이 순종하려 애썼습니다.
데레사가 병을 앓고 있던 어느 날 저녁, 공동체는 예수 성심 제대 앞에서 성가를 부르려고 정원에 모였습니다. 이미 열병으로 몹시 쇠약해진 데레사 수녀도 힘겹게 그 자리에 왔지만,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지쳐 곧바로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가가 시작되자 한 수녀가 일어서라고 눈짓했습니다. 겸손한 이 어린 수녀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열과 몹시 짓눌리는 듯한 고통에도 끝까지 서 있었습니다.
간호 담당 수녀는 데레사에게 날마다 15분씩 정원을 가볍게 걸으라고 권했습니다. 데레사에게 이 권고는 명령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걷는 일이 데레사에게 얼마나 힘겨운지 알아차린 한 수녀가 말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 쉬는 편이 훨씬 낫겠어요. 이렇게 걷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요. 몸만 더 지칠 뿐이지요!” 데레사가 대답했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무엇이 제게 힘을 주는지 아세요? 저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어느 선교사를 위해 봉헌해요. 저 멀리 어딘가에서 선교사 한 분이 사도직 활동으로 지치고 힘들어하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그분의 피로를 덜어 드리려고 저의 피로를 좋으신 하느님께 봉헌한답니다.”
데레사는 자신이 지도하던 수련자들에게 집착에서 벗어나는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느 해, 수녀들의 친지들과 수녀원에서 일하는 이들이 원장 수녀의 영명 축일을 맞아 꽃다발을 보내왔습니다. 데레사가 꽃들을 매우 감각 있게 정돈하고 있는데, 한 평수녀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큰 꽃다발들은 수녀님 친구들이 보낸 게 분명하군요. 가난한 사람들이 보낸 꽃들은 이번에도 뒤쪽으로 밀려나겠지요!” . . . 데레사는 다정한 미소로만 답하고는, 전체적인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게 되는데도 곧바로 일하는 이들이 보낸 꽃들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았습니다.
깊이 감탄한 그 평수녀는 곧장 원장 수녀를 찾아가 자신의 불친절을 고백하고, 데레사 수녀가 보여 준 인내와 겸손을 칭찬했습니다.
데레사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수녀는 굳은 신뢰를 품고 성덕 높은 데레사 수녀의 발에 이마를 대고 자신의 잘못을 다시 한번 용서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수녀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며 독서에도 묵상 기도에도 전념하지 못하게 했던 뇌빈혈이 나았음을 느꼈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굴욕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래서 비위를 맞추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한 수녀의 “보조”가 되겠다고 자원했고, 그 너그러운 제안은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느 날 그 수녀 때문에 몹시 시달린 뒤, 한 수련자가 데레사에게 왜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지 물었습니다. 수련자는 이런 대답을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 “방금 N. 수녀님이 제게 듣기 거북한 말씀들을 하셨기 때문이에요. 제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셨는지 몰라요! 지금 그 수녀님을 만나 다정하게 미소 지어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 . . 데레사가 아직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바로 그 수녀가 문을 두드렸고, 놀란 수련자는 성인들이 어떻게 용서하는지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나중에 자신이 “세상일을 훌쩍 넘어 아주 높이 날아올라 있었기에 굴욕은 자신을 더욱 굳세게 할 뿐이었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데레사는 이 모든 덕에 놀라운 용기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열다섯 살에 가르멜에 입회했을 때부터, 단식만 제외하고는 엄격한 수도 규칙의 모든 실천을 따르도록 허락받았습니다. 때때로 수련기의 동료들은 데레사의 창백한 모습을 보고 밤 성무일도에 참석하거나 아침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는 의무를 면제받게 해 주려 했지만, 원장 수녀는 그런 요청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원장 수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토록 굳센 영혼을 어린아이처럼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아이에게는 관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아이를 지탱해 주시니 그대로 두십시오. 게다가 정말 아프다면 직접 와서 내게 말해야 합니다.”[2]
그러나 데레사는 언제나 “우리의 힘이 다할 때까지는 힘들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현기증이나 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밤 성무일도에 얼마나 자주 참석했던지요! 데레사는 “걸을 수 있으니, 마땅히 제 의무를 다하는 자리에 있어야지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꺾이지 않는 기력으로 영웅적인 행위들을 실천했습니다.
그녀의 연약한 위장은 가르멜의 소박한 음식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떤 음식은 먹으면 탈이 났지만, 그녀는 이를 워낙 잘 감추었기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식탁에서 곁에 앉던 수녀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내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고 말했습니다. 주방 수녀들은 그녀가 무엇이든 잘 먹는다고 여겨 늘 남은 음식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석에 누웠을 때,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이 무엇인지 말하라는 명을 받고서야 그녀의 극기가 드러났습니다. 그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고통받기를 바라실 때에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 성심의 마리아 수녀님[3]이 살림을 맡고 계셨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수녀님은 어머니 같은 다정함으로 저를 보살피려고 애쓰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가 보살핌을 잘 받고 있었지만, 실은 수녀님 덕분에 얼마나 많은 극기를 해야 했는지 모릅니다! 제 입맛과는 정반대인 당신의 입맛에 따라 음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데레사의 희생 정신은 삶의 구석구석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녀는 고통스럽고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을 마땅히 자신의 몫으로 여기며 열심히 찾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주저하거나 남겨 두는 일 없이 모두 바쳤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원기 동안 우리 수도원들에서 관례로 행하는 몇 가지 외적 고행을 실천하는 일이 제게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거부감에 굴복한 적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상이 애원하는 눈길로 저를 바라보며 이러한 희생을 청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늘 깨어 있었기에 원장 수녀님의 사소한 당부나 수도 생활을 그토록 공로롭게 해 주는 작은 규칙들도 하나같이 지켰습니다. 한 연로한 수녀는 이 점에서 그녀가 보이는 남다른 충실함을 눈여겨본 뒤로 줄곧 그녀를 성녀로 여겼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자신이 대단한 고행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자신에게 허락된 몇 가지 고행을 열정에 넘치는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돌기가 박힌 작은 쇠 십자가를 너무 오랫동안 몸에 지녀 살이 눌리고 찔리는 바람에 병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성인들이 행한 더 엄한 고행은 저에게도, ‘영적 어린이의 길’을 걷는 영혼들에게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려 하지 않으셨다면, 이런 사소한 일로 병이 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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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한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영혼들은 그분께서 가장 많은 시련을 주시는 영혼들이다. 그 시련의 크기가 바로 그분 사랑의 척도이다.” 데레사는 하느님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영혼이었으며,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녀가 참된 순교를 겪게 하심으로써 당신 사랑의 분량을 가득 채우려 하셨습니다. 독자들은 1896년 4월 3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그녀가 받은 부르심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날 그녀는 자신의 표현대로 “신랑께서 가까이 오심을 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해방의 복된 시간이 오기까지 그녀는 여전히 기나긴 몇 달 동안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주님 수난 성금요일 아침, 그녀는 전날 밤의 출혈을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원장 수녀님은 그날 회칙에 규정된 모든 고행을 실천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오후에 한 수련 수녀가 그녀가 창문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얼굴은 창백했고, 의욕은 넘쳤지만 기력이 거의 다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녀를 무척 사랑하던 그 수련 수녀는 지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터뜨리며,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오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수련장은 이를 단호히 금하며,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고 돌아가신 날에 이 정도의 가벼운 피로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끊이지 않는 기침 때문에 원장 수녀님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원장 수녀님은 데레사 수녀에게 기력을 더 북돋아 줄 음식을 먹도록 명했고, 기침은 한동안 멎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작은 수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참으로 병은 저를 너무나 더디게 해방시켜 주는군요. 저는 오직 사랑에만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간절히 원하던 하노이 가르멜 수녀들의 요청에 응하고 싶은 마음에 강하게 이끌렸고, 병이 낫도록 테오판 베나르 존자[4]에게 9일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9일 기도는 병세가 더 심각한 단계로 접어드는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거룩하신 스승처럼 세상을 두루 다니며 좋은 일을 하였고, 그분처럼 잊힌 채 알려지지 않고 지냈습니다. 이제 그녀는 여전히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갈바리아 언덕을 올라야 했습니다. 늘 고통받으면서도 언제나 기쁘고 용감한 그녀의 모습에 익숙해진 원장 수녀님은, 틀림없이 하느님의 이끄심을 받아, 그녀가 공동체 일과에 참여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그녀를 몹시 지치게 하는 일과도 있었습니다. 밤이면 그녀는 용기를 내어 홀로 계단을 올라갔고, 한 계단마다 멈추어 숨을 돌렸습니다. 가까스로 자기 방에 이르면 너무나 기진맥진하여, 나중에 스스로 털어놓았듯이 때로는 옷을 벗는 데만 꼬박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모든 힘겨운 일을 겪은 뒤에도 그녀가 쉬는 곳은 딱딱한 잠자리였습니다. 밤에도 몹시 괴로웠기에, 고통스러운 시간에 누군가 곁에 있어 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물음을 받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수녀님들에게 제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떨어진 방에 있으니 더없이 기쁩니다. 저는 혼자 고통받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누군가 저를 가엾이 여기며 온갖 보살핌을 베풀기 시작하면 제 행복은 곧 사라지고 맙니다.”
이 말에는 얼마나 굳센 영혼의 힘이 드러나는지요! 우리가 슬픔을 느끼는 곳에서 그녀는 기쁨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견디기 힘들어하는 일, 곧 피조물들에게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즐거움의 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상 신랑께서는 그녀가 그토록 달콤하게 여기는 그 쓰디쓴 기쁨을 어떻게 마련해 주어야 하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아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그런 치료로 평소보다 더 고통을 겪은 뒤 공동 휴식 시간에 자기 방에서 쉬고 있던 그녀는 부엌에서 한 수녀가 자신에 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오래 살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가끔은 그 수녀가 죽으면 원장 수녀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 정말 궁금해요.[5] 몹시 난감하실 거예요. 이 어린 수녀가 상냥하기는 하지만, 내세워 말할 만한 일을 한 적은 분명 한 번도 없으니까요.” 그 말을 함께 들은 간호 담당 수녀가 데레사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평판에 기대고 있었다면 오늘 참으로 실망했겠어요.” 데레사는 대답했습니다. “피조물들의 평판이라니요! 다행히 하느님께서는 제가 그런 것에 전혀 마음 쓰지 않는 은총을 주셨어요. 그런 평판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단번에 깨닫게 해 준 일을 말씀드릴게요. 착복식을 한 지 며칠 뒤,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의 방에 갔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수녀님 한 분이 저를 보시고 말씀하셨어요. ‘원장 수녀님, 이 수련자는 참으로 수녀님을 보람 있게 해 드리네요. 얼마나 건강해 보이는지요! 앞으로 오랫동안 수도 규칙을 지킬 수 있기를 바라요.’ 이 칭찬을 듣고 저는 무척 기분이 좋아져 있었는데, 다른 수녀님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저를 보고 말씀하셨어요. ‘가엾은 어린 데레사 수녀, 어쩌면 그렇게 지쳐 보여요! 정말 걱정스럽네요. 곧 나아지지 않으면 수도 규칙을 오래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요.’ 그때 저는 겨우 열여섯 살이었지만, 이 작은 일이 제게 너무나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그 뒤로는 변덕스러운 피조물들의 평판을 다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또 다른 때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수녀님은 큰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없다고들 해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선명한 붉은색 약이 담긴 잔을 가리켰습니다. “이 작은 잔이 보이나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누구나 아주 맛있는 음료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제가 먹는 다른 어떤 약보다도 더 써요. 이것이 바로 제 삶의 모습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 삶이 온통 장밋빛으로 보였지요. 제가 언제나 더없이 맛있는 포도주를 마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게는 쓰라림으로 가득한 삶이었어요. 쓰라림이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제 삶이 쓰라린 삶이었던 것은 아니에요. 저는 쓰라린 모든 것 안에서 기쁨과 달콤함을 찾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지금 몹시 고통스러우시지요?” “네, 하지만 저는 고통받기를 그토록 갈망해 왔어요.” “수녀님께서 이렇게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니, 게다가 고통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저희는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그녀가 맡아 돌보던 수련자들이 말했습니다.
“아! 저 때문에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더는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모든 고통이 그토록 달콤해졌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제가 앞으로 또 무엇을 겪게 될지 걱정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에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간섭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사랑의 길을 달리는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돼요. 제가 그저 한순간 한순간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인내하기란 불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저는 오직 현재만 바라보고, 과거는 잊으며, 미래를 앞당겨 생각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요. 우리가 낙담이나 절망에 빠지는 것은 대개 과거와 미래를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세요. 제가 하늘에 도움을 청하며 부르짖을 때야말로 가장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때가 많으니까요.”
“그럴 때 어떻게 낙담에 빠지지 않으시나요?” “저는 하느님과 모든 성인께 의지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감사를 드려요. 저의 의탁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이라고 믿어요. 그런데 욥의 말이 제 마음에 들어온 것은 헛되지 않았어요. ‘하느님께서 저를 죽이신다 해도, 저는 여전히 그분께 의탁하겠습니다.’[6] 이렇게 온전히 저 자신을 맡겨 드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인정해요. 하지만 이제 저는 그 경지에 이르렀고, 저를 그곳으로 이끌어 주신 분은 바로 주님이세요.”
또 다른 때에 그녀는 말했습니다. “주님의 뜻이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기에, 다른 무엇이 더해지더라도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맑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가볍게 미끄러져 지나가요. 제 마음이 이미 가득 차 넘치고 있지 않아서, 그토록 빠르게 번갈아 찾아오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으로 채워져야 한다면, 쓰라린 고통의 물결이 참으로 제 마음을 뒤덮을 거예요. 하지만 이처럼 잇달아 일어나는 변화는 제 영혼의 표면에 잔물결조차 거의 일으키지 못하며, 그 깊은 곳에는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평화가 깃들어 있어요.”
그런데도 그녀의 영혼은 짙은 어둠에 싸여 있었고, 번번이 이겨 내도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신앙에 대한 유혹은 다가오는 죽음을 생각할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모조리 앗아 갔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시련만 없다면,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생각에 저는 기뻐서 죽을 것만 같아요.”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이 시련을 통하여 데레사의 정화를 마무리하시어, 신뢰와 온전한 내맡김의 작은 길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을 뿐 아니라 달릴 수 있게 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데레사의 말은 이를 거듭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죽음도 삶도 바라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선택하라고 하신다 해도 저는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원하며,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랑합니다. 저는 마지막 싸움도, 병으로 겪게 될 그 어떤 고통도, 아무리 크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제 손을 잡아 이끌어 주셨으니, 저는 그분께 의지합니다. 제 임종의 고통이 극한에 이를지라도, 그분께서 결코 저를 버리지 않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이토록 깊은 신뢰는 필연적으로 악마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악마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온갖 계략을 써서 죽어 가는 이들의 마음에 절망의 씨앗을 뿌리려 드는 자입니다.
데레사는 한번은 예수의 아녜스 수녀에게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어젯밤 저는 무서운 불안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듯했는데, 그 어둠 속에서 저주받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고 확신하느냐? 그분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피조물들의 생각이 하느님 앞에서 너를 의롭게 해 주지는 못한다.’ 이런 생각들로 오랫동안 괴로워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짧은 편지가 마치 하늘에서 온 소식처럼 제게 전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예수님께서 제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특별한 은총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겪는 시련에 관하여 계시라도 받으신 듯, 하느님께서 저를 깊이 사랑하시며 이제 곧 그분 손에서 영원한 화관을 받게 되리라고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곧바로 제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작은 어머니가 이렇게 쓰신 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복음서를 집어 들라는 이끄심을 느꼈고, 아무 데나 펼쳤더니 그때까지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구절이 나타났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7] 그러고는 충만한 위로 속에 잠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좋으신 하느님께서 제게 보내 주신 분은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니, 저는 어머니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8월 중 며칠 동안 데레사는 말하자면 제정신이 아닌 듯한 상태에 머물렀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전에는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고뇌 속에서 데레사는 거듭 말했습니다. “아! 임종의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요! 사람들이 그저 알기만 한다면!”
어느 날 밤 데레사는 간호 담당 수녀에게 자기 침대에 성수를 뿌려 달라고 애원하며 말했습니다. “악마가 저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집니다. 악마는 제가 한 조각의 위로도 얻지 못하도록 저를 괴롭히며 쇠처럼 단단한 힘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저를 절망으로 몰아넣으려고 제 고통을 더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저는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성모님을 바라보며 ‘예수님!’ 하고 부를 수 있을 뿐입니다. 끝기도 때 바치는 기도가 얼마나 절실한지요. ‘Procul recedant somnia et noctium phantasmata!’(‘밤의 허깨비들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제 안에서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영혼을 위해 고통받고 있으며, 사탄은 화가 나 있습니다.” 놀란 간호 담당 수녀가 축복받은 초에 불을 켜자 어둠의 영은 달아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통받는 데레사는 마지막까지 극심한 고뇌 속에 머물렀습니다.
어느 날 데레사가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지않아 저 푸른 하늘 너머가 수녀님의 집이 되겠군요. 참으로 사랑스럽게도 바라보시네요!” 데레사는 그저 미소만 지었지만, 나중에 원장 수녀에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수녀님들은 제 고통을 모르십니다. 방금 하늘을 바라볼 때 저는 그저 눈에 보이는 하늘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을 뿐입니다. 참된 천국은 어느 때보다도 제게 굳게 닫혀 있는 듯합니다. 처음에는 수녀님들의 말이 저를 괴롭게 했지만, 내면의 목소리가 속삭였습니다. ‘그래, 너는 사랑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영혼은 온전히 사랑에 내맡겨져 있으니, 네 모든 행동에는, 아무리 대수롭지 않은 행동에도, 이 거룩한 인장이 찍혀 있단다.’ 저는 곧바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데레사를 에워싼 어둠 속에서도, 거룩하신 구세주께서는 때때로 그 감옥의 문을 조금 열어 두셨습니다. 그럴 때면 데레사의 영혼은 신뢰와 사랑의 환희에 휩싸여 자신을 잊었습니다. 어느 날 친자매 한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정원을 거닐다가, 암탉이 예쁜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품고 있는 정겨운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데레사는 동행하던 자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더는 여기 있을 수가 없어. 안으로 들어가자!” 자기 방에 돌아와서도 눈물은 계속 흘렀고, 한참이 지나서야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데레사는 천상에 있는 듯한 표정으로 자매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주님 생각을 하고 있었어. 말로 다 할 수 없이 다정하신 당신의 사랑을 우리가 깨닫도록 주님께서 택하신 그 아름다운 비유가 떠올랐어. 주님께서는 내 평생에 바로 그렇게 해 주셨어. 당신 날개 아래 나를 온전히 숨겨 주셨어. 방금 내 마음을 뒤흔든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가 없어. 하느님께서 당신을 감추시고, 아주 드물게, 말하자면 ‘격자창 뒤에서’ 당신 자비가 이루어 내는 일을 보게 해 주시는 것이 내게는 좋은 일이야. 그렇지 않다면 나는 결코 그토록 큰 감미로움을 감당할 수 없을 거야.”
. . . . . . .
공동체는 자신들의 보물을 잃게 되리라는 생각에 깊은 슬픔에 잠겨, 1897년 6월 5일 승리의 성모님께 9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성모님께서 시들어 가는 작은 꽃을 다시 한번 기적으로 일으켜 주시리라는 간절한 희망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응답은 순교 복자 테오판 베나르가 준 응답과 같았고, 공동체는 다가오는 이별의 쓰라림을 기꺼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7월 초, 데레사의 병세가 매우 위중해져 마침내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님은 데레사의 빈 수방을 보고, 그가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을 때, 이 수방을 바라보면 내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니!”
“작은 어머니, 그럴 때는 제가 저 하늘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생각하시며 위로를 얻으세요. 그리고 제 행복의 많은 부분을 바로 이 작은 수방에서 얻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데레사는 아름다운 눈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덧붙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참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까요. 그곳에서 죽을 수 있었다면 기뻤을 거예요.”
병실에 들어서면서 데레사는 그곳으로 옮겨 놓은 기적의 성모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데레사가 기적으로 치유되는 것을 목격했던 언니 마리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보이니?” 데레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모님께서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 . . 하지만 오늘은 성모상이에요. 언니도 잘 알다시피, 그날은 성모상이 아니었지요!” 그때부터 데레사는 이와 비슷한 위로를 자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데레사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저는 복되신 성모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제가 사제였다면 성모님을 얼마나 찬미했을까요! 사람들은 성모님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처럼 이야기하지만, 본받기 쉬운 분으로 보여 주어야 해요. . . . 성모님은 여왕이시기보다 어머니이세요. 떠오르는 태양이 모든 별을 사라지게 하듯이, 성모님의 광채가 모든 성인의 광채를 가린다는 말을 들었어요. 참 이상하게 들려요. 어머니가 자녀들의 영광을 앗아 가신다니요! 제 생각은 정반대예요. 성모님께서는 선택받은 이들의 광채를 훨씬 더 빛나게 해 주시리라고 믿어요. . . . 우리 어머니 마리아! 아, 성모님의 삶은 얼마나 소박하셨을까요!” 데레사는 말을 이어 가며 성가정의 모습을 너무나 다정하고 아름답게 그려 내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정배께 가기 전에 데레사에게는 매우 무거운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8월 16일부터 행복한 선종의 날인 9월 30일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병고 때문에 영성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지상의 이 세라핌처럼 천사의 양식을 갈망한 이는 드물 것입니다. 생애의 마지막 겨울 동안, 데레사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밤을 지새우고도 하늘의 만나를 받아 모시려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기를 거듭했습니다. 하느님을 양식으로 모시는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천상 양식을 완전히 거두시기 전에, 고통의 침상에 누운 데레사를 자주 찾아오셨습니다. 7월 16일 카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한 영성체는 특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데레사는 그 전날 밤, 영성체 전에 부를 시 몇 구절을 지었습니다.
주님, 제 영혼의 비천함을 아시면서도 몸을 낮추어 제 안에 오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나이다. 흠숭하올 성체여, 제 마음에 오소서! 제 마음에 오소서 . . . 제 마음은 오직 당신만을 갈망하나이다! 당신께서 오시면 곧바로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죽게 하소서. 이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오, 예수님, 간절히 부르짖는 제 청을 들어 주소서. 제 마음에 오소서!
아침에 노자 성체를 병실로 모셔 올 때, 회랑에는 들꽃과 장미 꽃잎이 수북이 뿌려져 있었습니다. 그날 카르멜 수도원 경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던 젊은 사제가 임종을 앞둔 수녀에게 성체를 모셔 왔습니다. 그리고 데레사의 바람에 따라, 유난히 고운 목소리를 지닌 성체의 마리아 수녀가 다음 두 줄의 시를 노래했습니다.
감미로운 순교여! 사랑의 맹렬한 불길에 타 죽는 것,
내 마음이 그토록 바라는 순교여!
케루빔들이여, 어서 수금의 줄을 고르십시오.
저는 이 유배의 고통 속에 오래 머물지 않으리니!
. . . . . . .
오, 예수님, 제 꿈을 이루어 주소서.
사랑으로 죽기를 제가 애타게 바라나이다!
며칠 뒤 데레사의 병세가 악화되었고, 7월 30일에는 병자성사를 받았습니다. 사랑의 작은 제물인 데레사는 기쁨으로 환히 빛나며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제 어두운 감옥 문이 조금 열렸어요. 저는 기쁨에 흠뻑 잠겨 있어요. 특히 원장 신부님께서 오늘 제 영혼이 막 세례를 받은 어린아이의 영혼과 같다고 확언해 주셨기 때문이에요.”
틀림없이 데레사는 머지않아 흰옷을 입은 무죄한 어린이 순교자들의 무리에 합류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직도 두 달이나 되는 긴 순교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데레사는 원장 수녀님에게 그 지향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며 청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간청드려요. 제가 죽도록 허락해 주세요. 이 지향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게 해 주세요.” 허락을 받지 못하자 데레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주님께서는 아무도 드리려 하지 않는 작은 포도송이 하나를 몹시 원하고 계시니, 어쩔 수 없이 오셔서 훔쳐 가셔야 하리라는 것을 저는 알아요. . . . 저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는 것은 저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제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니까요. 다만 성모님께,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스스로를 가리켜 쓰신 도둑이라는 이름을 당신의 아드님께 상기시켜 주시기를 간청할 뿐이에요. 저를 데리러 오시는 것을 잊지 않으시도록 말이에요.”
. . . . . . .
어느 날 데레사 수녀는 사람들이 가져다준 곡식 단에서 이삭 하나를 뽑았습니다. 낟알이 어찌나 가득 달렸던지 줄기가 휘어져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던 데레사는 원장 수녀님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 이삭은 제 영혼의 모습이에요. 하느님께서는 저와 다른 많은 이를 위하여 제 영혼에 은총을 가득 채워 주셨어요.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온다는 것을 인정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의 무게 아래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사는 것이 제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일이에요.”
데레사의 말은 옳았습니다. 그 영혼에는 참으로 은총이 가득했고, 그 순진한 아이의 입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께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계심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진리의 영께서는 이미 위대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에게 다음 말씀을 받아쓰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에 이른 영혼들은 겸손하고 거룩한 자부심으로 자신을 귀히 여기십시오. 자신이 받은 좋은 것들을 끊임없이 눈앞에 떠올리며, 하느님의 선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겸손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경계하십시오. 받은 선물을 늘 기억하는 것이 그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사랑을 키워 준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지닌 부요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리지외의 작은 데레사’[8]가 예언으로 드러난 말을 한 것은 위의 경우만이 아니었습니다. 1895년 4월, 아직 건강이 아주 좋았을 때 데레사는 나이 든 수녀 한 분에게 조용히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곧 죽을 거예요. 몇 달 안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길어야 이삼 년 안일 거예요. 제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아 알 수 있어요.”
수련자들은 데레사가 자신들의 마음속 깊은 생각을 읽어 낼 때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데레사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제 비결은 이것이에요. 저는 여러분을 타이를 때면 언제나 먼저 복되신 성모님을 부르며, 여러분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제게 일깨워 주시기를 청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내용에 저 자신도 자주 놀란답니다. 그럴 때면 제가 잘못 말하지 않으며, 제 입술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느껴요.”
데레사가 병을 앓고 있을 때, 자매 가운데 한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이별을 생각하다가 낙담할 지경에 이를 만큼 극심한 고통을 잠시 겪었습니다. 곧이어 그 자매는 병실로 갔지만, 슬픔의 기색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데레사가 슬프고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자매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우리는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 돼요.”
어느 장상 수녀가 데레사를 찾아와 작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수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천사 같은 이가 그저 “천국에서 갚아 드릴게요!”라고 말해 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바로 그 순간 데레사 수녀가 그 수녀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천국에서 갚아 드릴게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기로 정하신 사명을 데레사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미래를 가리는 장막이 걷힌 듯했고, 데레사는 우리에게 그 비밀을 여러 차례 예언으로 밝혀 주었는데, 그 예언들은 이미 실현되었습니다.
“저는 좋으신 하느님께 사랑밖에는 드린 것이 없어요.
그분께서도 사랑으로 갚아 주실 거예요.
저는 죽은 뒤에 장미꽃 비를 내리겠어요.”
또 한 번은 어느 수녀가 천국의 행복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데레사가 그 말을 가로막으며 이처럼 숭고한 말을 했습니다. “제 마음을 끄는 것은 그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무엇이 수녀님의 마음을 끄나요?” 하고 그 수녀가 물었습니다. “아! 사랑이지요! 사랑하고, 사랑받고, 우리의 사랑이신 분께서 사랑받으시도록 다시 이 땅에 돌아오는 것이에요!”
어느 날 저녁, 데레사는 유난히 기쁜 표정으로 예수의 아녜스 수녀를 맞이했습니다. “어머니!” 하고 데레사가 말했습니다. “방금 멀리서 열린 연주회의 가락이 몇 소절 제 귀에 들려왔어요. 그러자 곧 천국의 놀라운 선율을 듣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그 생각이 준 기쁨은 한순간뿐이었어요. 제 가슴을 뛰게 하는 희망은 오직 하나, 제가 받게 될 사랑과 제가 드릴 수 있게 될 사랑뿐이에요!
“제 사명이 곧 시작되리라는 것이 느껴져요.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듯 다른 이들도 그분을 사랑하게 하고 . . . 영혼들에게 저의 작은 길을 가르치는 사명이에요 . . .
저는 천국에서 지내는 동안 이 땅에 선을 베풀겠어요.
이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에요. 천사들도 바로 지복직관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아니에요, 세상 끝날 때까지 제게는 쉼이 있을 수 없어요. 그러나 천사가 ‘시간은 더 이상 없다!’라고 말하고 나면, 그때 저는 쉴 거예요. 그때는 기뻐할 수 있을 거예요. 선택된 이들의 수가 다 찰 테니까요.”
“영혼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는 그 작은 길은 어떤 길인가요?”
“그것은 영적 어린이의 길, 신뢰와 온전한 자기 봉헌의 길이에요.
저는 언제나 더없이 좋은 결실을 얻었던 방법을 영혼들에게 알려 주고 싶어요. 이 지상에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예수님께 작은 희생의 꽃들을 바치고 다정한 사랑의 손길로 그분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저는 그렇게 그분의 마음을 얻었고, 바로 그렇기에 그토록 따뜻한 환영을 받게 될 거예요.”
“혹시 제가 사랑의 작은 길로 수녀님을 잘못 이끌더라도,” 하고 데레사는 어느 수련자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수녀님을 그대로 그 길에 두리라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곧 이 땅으로 돌아와 다른 길로 가라고 말해 줄 거예요. 제가 돌아오지 않거든, 제가 하는 이 말이 참되다고 믿으세요. 좋으신 하느님을 아무리 깊이 신뢰해도 지나칠 수는 없어요. 그분께서는 그토록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니까요. 우리는 그분께 바라는 만큼 받게 될 거예요.”
카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전날, 어느 수련자가 데레사에게 말했습니다. “수녀님이 내일 영성체 후에 돌아가신다면 저는 충분히 위로받을 것 같아요. 참으로 아름다운 죽음일 테니까요!” 데레사는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영성체 후에 죽는다고요! 큰 축일에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저의 ‘작은 길’에서는 모든 것이 지극히 평범해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작은 영혼들도 똑같이 할 수 있어야 해요.”
또 데레사는 자신의 선교사 형제 가운데 한 사람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저를 하늘의 고향으로 이끄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그와 더불어, 마침내 제 마음이 갈망하는 대로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영원토록 그분을 찬미할 수많은 영혼이 그분을 사랑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입니다.”
또 중국으로 보낸 다른 편지에는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천국에서도 결코 아무 일 없이 지내지는 않으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교회와 영혼들을 위한 제 일을 계속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저는 하느님께 이를 청하고 있으며, 그분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이토록 일찍 싸움터를 떠난다 해도, 그것이 안식을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은 아님을 아시겠지요. 오래전부터 고통은 이 지상에서 저의 천국이 되어 왔기에, 슬픔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기쁨의 나라에 제가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제 영혼을 완전히 바꾸어 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가 낙원의 황홀을 결코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요.”
참으로 그러했습니다. 고통은 데레사에게 지상의 천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행복을 반기듯 데레사는 고통을 반겼습니다. 데레사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고통이 심할 때나 괴롭고 언짢은 일이 생길 때면, 저는 침울한 표정 대신 미소로 응답합니다. 처음에는 늘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었고, 그런 습관을 들이게 되어 기쁩니다.”
어느 수녀는 데레사의 인내심을 미심쩍어했습니다. 하루는 병문안을 왔다가, 병자의 얼굴에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기쁨이 어려 있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데레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통증이 너무나 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고통을 사랑하고 기쁘게 맞아들이려고 애써 왔습니다.” 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가 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왜 그리 밝은가요?” “작은 십자가 두 개 때문입니다. ‘작은 십자가’만큼 제게 ‘작은 기쁨’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대화가 오갔습니다. “오늘 시련이 많았지요?” “네, 하지만 저는 그 시련들을 사랑합니다! …… 좋으신 하느님께서 제게 보내 주시는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고통이 참으로 끔찍하군요!” “아닙니다. 끔찍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작은 제물이 자신의 신랑께서 보내 주시는 것 가운데 무엇을 끔찍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는 매 순간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보내 주시고, 그 이상은 보내지 않으십니다. 고통을 더해 주시면 제 힘도 그만큼 더해집니다. 하지만 더 큰 고통을 청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저는 너무나 작은 영혼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그 고통들은 제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분 없이 그 모든 고통을 견뎌야 할 텐데, 저는 저 혼자 남겨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지혜롭고 슬기로운 동정녀는 임종의 침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덕의 기름으로 가득 찬 그의 등불은 마지막까지 환히 타올랐습니다. 성령께서 잠언에서 일깨워 주시듯이 “사람의 가르침은 그의 인내로 입증된다.”[9]는 말씀이 맞다면, 데레사의 말을 들은 이들은 그 가르침을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어떤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 인내로 그 가르침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방문할 때마다 감탄을 표했습니다. “이분이 얼마나 견뎌 내야 하는지 아신다면! 이토록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처럼 초자연적인 기쁨을 얼굴에 띠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 제가 이분을 낫게 해 드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분은 이 세상을 위해 지어진 분이 아닙니다.” 데레사가 극도로 쇠약해진 것을 보고, 의사는 기력을 보강할 약을 처방했습니다. 데레사는 처음에는 약값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지만, 나중에는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이제는 그 비싼 약들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더 이상 마음에 걸리지 않습니다. 성녀 제르트루다께서 그런 약을 받으셨을 때, 그것이 우리 은인들에게 유익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기뻐하셨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너희가 나의 이 작은 이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에게 해 준 것은 무엇이든 나에게 해 준 것이다.’[10] 하고 말씀하셨으니까요.” 데레사는 덧붙였습니다. “약으로는 저를 낫게 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을 돌볼 시간도 형편도 안 되는 가난한 선교사들이 그 약의 덕을 보게 해 주십사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데레사는 수도원 밖의 벗들이 끊임없이 보내 주는 꽃 선물에 깊이 감동했고, 침대 주위에서 노닐기를 좋아하는 작고 귀여운 붉은가슴울새가 찾아오는 것에도 감동했습니다. 데레사는 이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원장 수녀님, 저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이토록 많은 감동적인 표징들을 깊이 느낍니다. 저는 그 표징들로 가득 둘러싸여 있습니다. ……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 고통이 큽니다. …… 너무나 큽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은 깊은 평화 속에 있습니다. 제가 바라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 저는 신뢰로 가득합니다.”
얼마 뒤 데레사는 내게 이 작고도 감동적인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대침묵’ 시간에 간호 담당 수녀님이 발을 덥힐 더운물 주머니를 가져다주시고 가슴에 요오드 팅크를 발라 주셨습니다. 저는 타는 듯한 열에 시달리며 목이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그런 처치를 받으면서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예수님, 보시다시피 저는 이미 타오르고 있는데, 사람들이 제게 열과 불을 더 가져다주었습니다. 아, 물을 반 잔만이라도 가져다주었더라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 저의 예수님! 당신의 어린아이는 너무나 목이 마릅니다. 하지만 당신을 더욱 닮아,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당신을 도와드릴 이 기회를 얻어 기쁩니다.’ 간호 담당 수녀님은 곧 나가셨고, 저는 이튿날 아침까지는 수녀님을 다시 뵙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분 뒤 수녀님이 시원한 마실 것을 들고 돌아오셨으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수녀님은 ‘목이 마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러니 저녁마다 마실 것을 좀 가져다드릴게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놀라서 수녀님을 바라보았고, 다시 혼자가 되자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좋으신지요! 얼마나 다정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지요! 그분의 마음에 다가가기는 얼마나 쉬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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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예수님의 작은 신부는 그분의 성심께서 자신을 사랑으로 생각하고 계심을 보여 주는 감동적인 증표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특별한 수호자이신 테오파노 베나르 존자의 유해를 모시고 싶다는 바람을 여러 차례 내비쳤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자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원장 수녀가 바로 그날 도착한, 그토록 바라던 보물을 가져다주었을 때 그녀는 감격에 겨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유해에 거듭 입을 맞추었고, 잠시라도 곁에서 떼어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왜 이 젊은 순교자를 그토록 공경했는지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친자매들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이유를 직접 설명했습니다. “테오파노 베나르는 작은 성인이에요. 그분의 삶에는 특별히 비범한 일이 없었지요. 그분은 원죄 없으신 우리 어머니께 열렬한 신심을 지니셨고, 가족을 다정히 사랑하셨어요.” 그녀는 이 말에 마음을 두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도 제 가족을 다정히 사랑해요. 이런 마음을 함께 느끼지 못하는 성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워요. 작별 선물로, 그분이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들에서 몇 대목을 베껴 두었어요. 그분의 영혼과 제 영혼은 닮은 점이 많고, 그분의 말씀은 바로 제 생각을 그대로 되울려 주어요.”
데레사 자신이 썼다고 여길 만한 그 편지의 사본을 여기에 옮깁니다.
“이 땅에서는 저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 줄 것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의 갈망은 너무나 커서, 세상이 행복이라고 부르는 그 무엇도 이 마음을 채워 줄 수 없습니다. 제게는 곧 시간이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제 생각은 영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 마음은 고요한 호수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평화로 가득합니다. 저는 이 지상의 삶에 미련이 없습니다. 저는 영원한 생명의 물을 목말라합니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제 영혼은 이 땅을 떠나 귀양살이를 마치고 싸움을 끝낼 것입니다. 저는 하늘 나라로 갑니다. 복된 이들의 거처에 들어가, 눈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귀가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을 들으며 사람의 마음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들을 누리려 합니다. … 우리 모두가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 제게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큰 이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작은 이들을 선택하십니다. 저는 제 힘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지옥의 권세를 이기신 분께 의지합니다.
“저는 거룩하신 스승님께서 기꺼이 꺾으시는 한 송이 봄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 심긴 꽃들이며,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정하신 좋은 때에 우리를 거두실 것입니다. 어떤 이는 좀 더 일찍, 어떤 이는 좀 더 늦게 거두시겠지요. … 하루를 사는 작은 꽃인 제가 맨 먼저 꺾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원에서 다시 만날 것이며, 그곳에서는 영원한 기쁨이 우리의 몫이 될 것입니다.
“천사 같은 순교자 테오파노 베나르의 말을 빌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수녀.”
9월 말 무렵, 영혼들을 돌보는 이들의 책임에 관하여 휴식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를 누군가 그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기운을 되찾는 듯하더니 이 아름다운 말을 했습니다. “작은 이에게는 자비가 베풀어집니다.[11] 가장 큰 책임을 맡은 자리에서도 작은 이로 남을 수 있어요. 또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세상의 온유하고 비천한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일어나실 것’이라고 쓰여 있지 않나요?[12] 주님께서는 ‘심판하러’가 아니라 ‘구원하러’라고 말씀하십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의 물결은 점점 더 높아졌고, 그녀는 너무나 쇠약해져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속삭이는 소리만 들어도 괴로움이 더해졌으며, 열과 답답함이 너무나 심해 말 한마디 내뱉는 데에도 엄청난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입가에는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습니다.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오직 수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수고를 끼치는 일이었고, 죽기 이틀 전까지도 밤에 누군가 자기 곁을 지키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간호 담당 수녀는 그녀의 간곡한 만류에도 때때로 찾아와 살펴보곤 했습니다. 한 번은 데레사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세요?” 그 수녀가 물었습니다. “잠을 청해 보셔야지요.” “그럴 수가 없어요, 수녀님.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도하고 있어요. …” “그럼 예수님께 무슨 말씀을 드리세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아요. 그저 그분을 사랑할 뿐이에요!”
“오!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좋으신지요!” … 그녀는 때때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제가 겪어야 할 모든 고통을 견딜 힘을 주시니, 참으로 그분께서는 더없이 좋으신 분이심이 틀림없어요.” 어느 날 그녀는 원장 수녀에게 말했습니다. “원장 수녀님, 제 영혼의 상태를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지금은 너무 기운이 다한 것 같아요.” 그날 저녁, 데레사는 떨리는 손으로 연필을 쥐고 다음 글을 써서 원장 수녀에게 보냈습니다.
“오, 저의 하느님! 자비로우신 당신 사랑의 작은 제물에게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요! 이제 당신께서 제 영혼의 고통에 이 육신의 고통까지 더하셔도, 저는 차마 ‘죽음의 고통이 저를 에워쌌습니다.’[13] 하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에 차서 이렇게 외칩니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로 내려갔어도 저는 해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14]
그녀의 ‘작은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네가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될 수도 있지요. 저는 제가 얼마나 나약한지 알기에 제 감정을 믿지 않습니다. 그 십자가가 오면 그때 짊어져도 늦지 않습니다. 그동안에는 지금 누리는 행복을 기뻐하고 싶습니다. 담당 신부님께서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부님, 제게는 오히려 삶을 받아들일 마음이 필요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기쁨만 느껴지니까요.’ 사랑하는 어머니, 제가 마지막 순간에 몹시 고통스러워하며 행복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도 ‘사랑의 희생 제물’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분의 고뇌가 얼마나 컸는지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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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영원한 날이 밝았습니다. 1897년 9월 30일 목요일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이 온유한 희생 제물은 성모상에 눈길을 고정한 채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밤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제가 성모님께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요! … 그런데도 한 줄기 위로도 없이 온통 고뇌뿐이었습니다. … 지상의 공기로는 이제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언제쯤 천상의 공기를 마시게 될까요?”
그녀는 몇 주 동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오후 두 시 반에는 일어나 앉아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잔이 가득 차 넘칩니다!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을 수 있으리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영혼들을 구원하려는 제 간절한 열망 때문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 그리고 잠시 뒤에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을 향한 갈망에 관하여 제가 쓴 것은 모두 참말입니다! 저 자신을 사랑에 온전히 내맡긴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 마지막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습니다. 조금 뒤에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어머니, 제가 거룩한 죽음을 맞도록 준비시켜 주십시오.” 어진 원장 수녀는 이런 말로 그녀를 격려했습니다. “얘야, 너는 언제나 겸손의 덕을 이해해 왔으니 하느님 앞에 나아갈 준비가 온전히 되어 있단다.” 그러자 데레사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말로 자신에 관하여 증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것을 느낍니다. 제 영혼은 언제나 진리를 찾았습니다. … 저는 마음의 겸손을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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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 반, 그녀의 임종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희생 제물’이 겪는 고통이었습니다. 공동체 수녀들이 둘러 모이자, 그녀는 더없이 다정한 미소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랑과 고통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 채, 힘이 빠져 가는 두 손으로 십자고상을 꼭 쥐고 마지막 싸움에 들어갔습니다. 이마에는 죽음의 식은땀이 흥건히 맺혔습니다. … 온몸이 떨렸습니다. … 그러나 항구를 눈앞에 둔 항해사가 사나운 폭풍에도 낙담하지 않듯, 믿음으로 굳센 이 영혼은 바로 가까이에 천상의 등불이 빛나는 것을 보고 그 기슭에 이르려고 용감하게 온 힘을 다했습니다.
수도원의 종이 저녁 삼종 기도를 알리자, 데레사는 바다의 별이신 원죄 없으신 동정 성모상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눈길을 고정했습니다. 자신의 아름다운 기도를 다시 바칠 순간이 아니었겠습니까?
“오, 제 삶의 아침에 찾아와 미소 지어 주셨던 어머니, 다시 한번 오셔서 미소 지어 주소서. 이제 저녁이 되었나이다!”[15]
일곱 시가 조금 지났을 때, 가련한 이 작은 순교자는 원장 수녀를 향해 물었습니다. “어머니, 이것이 임종 고통이 아닌가요? … 저 이제 죽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 얘야, 임종 고통이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고통이 몇 시간 더 이어지기를 바라시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녀는 부드럽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다면 좋습니다. … 좋습니다. … 저는 고통이 덜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오! …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 저의 하느님, 저는 … 당신을 … 사랑합니다!”
이것이 데레사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데레사는 갑자기 몸이 푹 가라앉았고, 우리는 크게 놀랐습니다. 머리를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인 모습은 칼날 앞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동정 순교자들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사랑의 제물이 되어, 하느님이신 궁수께서 쏘실 불화살을 기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데레사는 그 화살을 맞고 죽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녀는 신비로운 목소리에 불리기라도 한 듯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행복과 평화로 빛나는 눈을 떠서 성모상보다 조금 위쪽을 응시했습니다. 그렇게 신경을 한 번 바칠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이제 ‘신적 독수리’의 먹잇감이 된 그녀의 복된 영혼은 천상 높은 곳으로 실려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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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이 작은 성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바라는 사랑의 죽음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맞으신 죽음입니다.” 그녀의 기도는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어둠이 그녀를 에워쌌고, 영혼은 고뇌에 잠겼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 사랑의 불길에 사로잡힌 영혼들을 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이 한 저 숭고한 예언을 그녀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사랑의 맹렬한 엄습에 자신을 바치는 희생 제물로서, 황홀한 탈혼 속에서 죽는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노래가 더욱 감미로워지는 백조처럼. 그러기에 시편 저자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소중하네.’[16] 바로 그때 영혼에서 사랑의 강물들이 터져 나와 하느님 사랑의 대양 속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그녀의 티 없는 영혼이 날아오르자마자 마지막 탈혼의 기쁨이 그 이마에 새겨졌고, 환한 미소가 얼굴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쥐여 주었습니다. 죽음을 맞은 그녀를 장식한 백합과 장미는 사랑의 순교로 붉게 물든 그녀의 흰 세례복을 상징했습니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수많은 사람이 수녀원 경당의 격자창 앞을 지나며 ‘예수님의 작은 꽃’의 유해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지막 잠이 드리운 승리의 아름다움 속에 누워 있는 ‘작은 여왕’의 몸에 대려고 수백 개의 성패와 묵주가 모여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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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일인 10월 4일에는 많은 사제가 가르멜 수녀원 경당에 모였습니다. 그 거룩한 직무에 부름받은 이들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기도했던 그녀에게 참으로 합당한 영예였습니다. 마지막 장엄한 축복이 끝난 뒤, 값을 매길 수 없이 귀한 이 밀알은 거룩한 어머니 교회의 손으로 밭고랑에 뿌려졌습니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잘 익은 이삭이 돋아났으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곡식 단이 거두어질지 누가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17] 거룩하신 수확자의 말씀이 다시 한번 장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가르멜 수도원 원장 수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게랑제 아빠스.
[2] 곤자가의 마리아 수녀는 1904년 12월 17일, 7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원장은 예수의 아녜스 수녀(폴린)였습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와 같은 가문 출신인 곤자가의 마리아 수녀는 데레사 수녀에게서 “성덕으로 충만하며 언젠가 훌륭한 원장이 될 수 있는 영웅적인 영혼”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엄격하게 그녀를 길렀으며, 젊은 성녀는 그 엄격함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의 작은 꽃’은 곤자가의 마리아 수녀의 품에 안겨 가르멜에 환영받아 들어왔고, 바로 그 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그 순간에 자신의 ‘작은 어머니’가 장상이 아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덕분에 권위에 대한 신앙 정신을 더욱 잘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편집자 주]
[3] 기억하시겠지만, 이는 맏언니 마리였습니다. [편집자 주]
[4] 복자 테오판 베나르는 1829년 11월 21일 성모 자헌 축일에 푸아티에 교구의 생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61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통킹의 케초에서 3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학창 시절에 시작하여 케초의 ‘우리’ 안에서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 이르기까지, 그가 가족과 오랫동안 주고받은 정겨운 서신들은 이 두 ‘봄꽃’이 성덕과 가족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시적인 감수성에서도 서로 닮았음을 보여 줍니다. 소년 같은 얼굴에 영혼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기에, 그는 두 달 동안 ‘우리’에 갇혀 지내면서도 어떠한 고문도 받지 않았습니다. 데레사에 대한 교구 심사가 시작되어 그가 ‘하느님의 종’이 된 1909년, 그의 수호자인 테오판은 시복의 영예를 받았습니다. 생루와 리지외의 성인들이 애정 어린 시로 찬미한 또 한 명의 프랑스의 딸, ‘순교한 처녀’ 잔 다르크도 같은 해에 시복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5] 프랑스에서 가르멜회 수녀가 선종하면 그 나라의 각 가르멜 수도원에 보내는 부고를 가리킵니다. 성덕의 향기 속에 선종한 이들의 경우, 이 부고는 때때로 상당히 길어지기도 합니다. 리지외 가르멜 수도원에서 발행한 네 편의 부고는 데레사 수녀의 전구를 청하는 이들에게 매우 뜻깊은 자료이며, 로치데일의 고아원 인쇄소에서 출간 중입니다. 그 네 편은 제8장에서 선종이 언급된, 이 가르멜 수도원의 성덕 높은 설립자 성녀 데레사의 주느비에브 수녀, 데레사의 원장 수녀였던 곤자가의 마리아 수녀, 데레사의 사촌인 성체의 마리아 수녀(마리 게랭, 제3장)의 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일부가 자서전으로 이루어진 성 안젤루스의 마리아 수녀(마리 앙주)의 긴 약전입니다. ‘데레사의 전리품’이라 불린 이 수녀는 데레사의 전구로 1902년에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왔으며, 필자는 이듬해 봄 그곳에서 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1908년에 원장 수녀가 되었고, 18개월 뒤 불과 28세의 나이로 성덕의 향기 속에 선종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6] 욥 13:15 참조.
[7] 요한 3:34.
[8] 선종하기 전, 천국에 있는 자신에게 어떻게 기도하면 되는지 묻자 데레사 수녀는 늘 그러했듯 소박하게 대답했습니다. “‘작은 데레사’라고 부르시면 됩니다—작은 데레사라고요.” 또한 갈리폴리의 가르멜 수도원에서 있었던 유명한 발현 때, 원장 수녀가 그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로 여기고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라고 부르자, 찾아온 이는 당시 자신의 공식 호칭을 사용하여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의 종, 리지외의 데레사 수녀입니다.” 이번 판에서는 ‘아기 예수와 성면의 데레사 수녀’라는 이름을 온전히 적는 편이 적절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자신의 이름인 ‘데레사 수녀’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가 복자 테오판 베나르에게서 빌려 와 자신의 원고 곳곳에서 두루 사용한 ‘작은 꽃’이라는 이름은 영어권에서 그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편집자 주]
[9] 잠언 19:11 참조.
[10] 마태 25:49.
[11] 지혜 6:7.
[12] 시편 75[76]:10 참조.
[13] 시편 17[18]:5 참조.
[14] 시편 22[23]:4 참조.
[15] 데레사 수녀가 쓴 마지막 시에서.
[16] 시편 115[116]:15.
[17] 요한 12:24, 25.
목차: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 하느님의 작은 꽃이 전하는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