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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전 4권 모두 종이책 & 전자책으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목차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기

부활 제4주일 (가해)—착한 목자 주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요한 10:1–3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쉽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목자들은 양들을 여러 풀밭으로 이끌어 풀을 뜯게 하면서, 양들이 자기 목소리에 익숙해지도록 온종일 말을 걸곤 했습니다. 밤에는 여러 목자가 양들을 함께 모아 안전하게 문을 닫아 둔 우리 안에 들여놓았습니다. 아침이 되면 목자들은 저마다 자기 양들을 불렀고, 양들은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알았기에 다른 목자가 아니라 자기 목자를 따라갔습니다.

오늘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첫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는가? 그분의 목소리에 익숙해져서 다른 목소리들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가? 여러 목자가 한꺼번에 자기 양들을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서로 다투어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느님의 목소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알고 계십니까? 아니면 관심을 끌려고 다투는 수많은 충동과 욕망, 매력적인 것들 때문에 혼란스러워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을 이어 가시며, 양들이 그 목소리를 알아듣는 목자이실 뿐 아니라 문이기도 하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문이라고 하실 때, 그것은 무슨 뜻일까요?

문이신 그분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한 것은 은총의 삶으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분은 교회의 가르치는 권위인 교도권이 전수하고 해설하는 진리의 말씀이십니다. 교도권의 참된 가르침에 충실한 것, 특히 교황님께서 주교들과 일치하여 가르치실 때 그 가르침에 충실한 것은 우리 시대의 수많은 오류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사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현존하십니다. 성사들은 그분의 은총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우리 영적 삶의 양식을 얻는 입구입니다. 더 나아가 거룩한 설교와 성인들의 증언과 가르침,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도 생활을 통해서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마다,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가 그분의 푸른 풀밭에 받아들여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만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으로 양들을 이끄는 모든 목자에게도 문이십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도록 그리스도의 사명을 위탁받은 교회의 목자들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목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는다면, 그 목자는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입니다. 교회의 목자들은 이 말씀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며 돌보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 모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온 우리 교회의 성전 전체에 충실해야 하며, 순수하고 거룩한 신앙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만의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 선포에 소홀하거나, 그릇된 길로 이끄는 가르침을 전한다면, 그들은 참된 목자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참된 양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에 충실하다면, 그들은 양들을 문으로 이끌어 들이고 착한 목자의 성심과 일치하는 목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착한 목자 그리스도의 모습을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그분의 참된 목소리를 알아들일 수 있도록 배워야 합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되면, 우리를 돌보시고 영감을 주시며 은총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그분을 더욱 쉽게 알아뵙게 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삶의 원천이자 길이신 그분을 만남으로써 그 초대에 응하게 됩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제게 말씀하시며 제 삶 안에서 주님의 현존과 이끄심을 드러내 주십니다. 주님의 거룩한 목소리에 깊이 익숙해져 언제나 그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하소서. 은총의 삶으로 들어가는 영광스러운 문이신 주님께 저를 이끄시고, 저를 충실하고 순종하는 양으로 변화시켜 주소서. 저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착한 목자의 도구

부활 제4주일 (나해) — 착한 목자 주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 10:11–13

오늘 부활 제4주일에 우리는 착한 목자 주일을 지냅니다. 우리 모두의 목자이신 예수님의 다정한 모습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양 떼를 돌볼 목자들이 우리 교회 안에 더 많이 나오도록 기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구절은 요한 복음 10장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 내용의 일부는 눈먼 사람의 치유 이야기가 길고 자세하게 담긴 앞 장을 해설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눈먼 그 사람을 고쳐 주셨음을 떠올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저 사람을 통하여 하느님의 일이 드러나려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 사람이 치유된 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치유가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믿지 않고 그를 회당에서 내쫓았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와 말씀을 나누셨고, 그는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깊은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눈을 뜨게 된 그 사람은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이처럼 이 사람이 받은 더 큰 치유는 예수님을 자신의 참된 목자로 받아들여 하느님의 양 떼에 속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행동을 당신의 행동과 대비하여 설명하십니다. 종교 지도자였던 바리사이들은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온 “도둑이며 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위에 인용한 복음 구절은 바리사이들이 왜 참된 목자가 아니었는지 설명합니다. 그들은 “삯을 받고 일하며”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바리사이들과, 태어날 때부터 눈먼 이 사람을 그들이 대한 방식에 어떻게 들어맞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선 이 바리사이들이 일하며 얻으려 했던 “삯”은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마음, 곧 덧없고 세속적인 보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의 참된 스승이자 해석자라고 여겼고,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위협으로 보았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분명 예수님을 자신들에게 그런 위협이 되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겸손하고 소박한 이 눈먼 사람에게 자신들의 시기심을 쏟아 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목자가 되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를 격려하지도, 지지하지도, 하느님께 이끌어 주지도 않았으며, 어떤 방식으로도 하느님 은총의 도구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만에 사로잡혀 죄 없고 거룩한 이 사람을 단죄하였습니다.

오늘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봉헌된 목자들을 통하여 우리를 돌보시지만, 우리 모두는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착한 목자께서 양 떼를 돌보시는 일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가정과 직장, 학교와 이웃, 교우 관계를 비롯한 모든 사회적 관계 안에서 사람들을 이끌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 바리사이들을 본받아, 이기심과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려는 욕망이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목자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되도록 내버려 둡니다.

오늘, 착한 목자를 본받아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라는 부르심을 받았음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마음에 깃든 이 사랑을 본받으려면, 우리는 사랑을 돌려받으려 하지 않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은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희생적인 사랑의 행위입니다. 교만과 이기심은 사라져야 하며, 다른 이의 선익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 성찰하고, 착한 목자께서 여러분을 도구로 삼으시어 여러분 삶 안에서 돌봄이 가장 필요한 이들을 돌보시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느님이신 목자님, 주님께서는 저희가 생명을 얻고 또 충만히 누리게 하시려고 저희 모두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러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고쳐 주신 눈먼 사람처럼 저도 주님께 믿음을 고백하며 주님을 흠숭하나이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본받도록 도와주시어, 저도 다른 이들을 위하여 제 목숨을 내놓고 그들을 거룩한 목자이신 주님께 이끌게 하소서. 저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덕으로 양 떼 돌보기

부활 제4주일 (다해) — 착한 목자 주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 10:27–28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정겹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양들을 이끄시거나 길 잃은 어린양을 어깨에 메고 가시는 그리스도의 온유한 모습을 그려 왔습니다. 오늘 착한 목자 주일을 지내는 우리에게 바로 이 모습이 제시됩니다.

오늘의 짧은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꼬투리 잡으려는 몇몇 유다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목에 앞서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 너희는 믿지 않는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 것은 질문하던 사람들이 그분께서 정말 메시아이신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분을 신성 모독으로 고발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신 일들을 통하여 이미 당신이 누구신지 그들에게 알려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삶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보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야말로 그분께서 목자로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주된 방식 가운데 하나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 안에 계시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하시는 일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많은 일 가운데에는 우리가 덕을 쌓으며 성장하도록 도와주시는 은총의 활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초자연적 덕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까?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이 덕의 성장을 통하여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다른 이를 용서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느낍니까?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덕의 성장을 통하여 무엇을 알려 주고 계십니까? 기도 생활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해 주는 경건의 덕이 자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이 덕의 성장을 통하여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면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분께서 우리 삶에 어떻게 손길을 베풀고 계시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덕이 자라나는 곳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으며, 그분께서는 그 부분에서 성장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반대로 삶에서 어떤 것이 우리를 죄로 이끌어 덕이 줄어들게 한다면, 이 또한 그러한 것들을 피하라고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목소리입니다. 

오늘, 자신의 삶에서 알아볼 수 있는 하느님의 활동을 묵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계시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알아볼 수 있도록 우리 영혼에 손길을 베푸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목자로서 이끌어 주시기도 합니다. 덕이 자라나는 곳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덕이 줄어드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을 따르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시는 저의 주님, 주님께서는 밤낮으로 제게 말씀하시며 저의 목자이신 당신을 따르라고 저를 부르십니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더욱 기꺼이 따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저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 알아듣기

부활 제4주간 월요일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요한 10:2–4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으십니까? 주님께서 날마다 이끌어 주시어 그분의 거룩한 뜻 안으로 인도해 주십니까? 주님께서 날마다 하시는 말씀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까? 이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들 가운데 일부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서로 다투는 듯한 여러 ‘목소리’가 들려오곤 합니다. 언론의 주요 기사에 실린 최신 소식부터 친구와 가족의 의견, 세속의 삶 속에서 우리를 에워싼 유혹, 그리고 우리 스스로 내린 판단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이런 ‘목소리’나 ‘생각’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일까요? 또 무엇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일까요?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은 참으로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보편적인 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담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목소리에 점점 더 익숙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부드러운 영감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내려야 할 어떤 결정을 두고 고민할 때, 기도 안에서 그 결정을 주님께 맡겨 드리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든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지닌다면, 흔히 그분의 응답은 마음 깊은 곳의 확고한 평화로 찾아옵니다.

일상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법은 귀 기울여 듣고, 알아듣고, 응답한 다음, 다시 더 귀 기울여 듣고, 알아듣고, 응답하는 내적 습관을 쌓아 가며 배우게 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수록 가장 미묘한 방식으로 들려오는 그분의 목소리도 더 잘 알아듣게 되며, 그 목소리의 미묘한 결까지 알아들을수록 그분을 더 잘 따를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이는 우리를 지탱해 주는 깊은 기도를 꾸준히 이어 가는 습관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한 기도가 없다면 주님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목자이신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매일의 기도는 어떤 모습입니까? 날마다 시간을 내어 우리 주님의 온유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까? 그분의 목소리를 점점 더 또렷이 알아듣게 해 주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매일 더 깊이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결심하십시오. 그리하여 사랑 넘치는 우리 주님의 목소리가 날마다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도록 하십시오.

저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주님께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제게 말씀하십니다. 제 삶을 향한 주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끊임없이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언제나 주님의 온유한 목소리를 알아듣게 도와주소서. 저의 기도 생활이 깊어지고 저를 든든히 지탱해 주어, 주님의 목소리가 제 마음과 영혼 안에 언제나 울려 퍼지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의 언어 배우기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요한 10:24–25

이 사람들은 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시기를 바랐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들의 질문에 답하셨는데도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어 그들을 놀라게 하십니다. 이 복음 대목은 예수님께서 착한 목자이시라는 아름다운 가르침을 이어 갑니다. 흥미롭게도,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이신지 아닌지를 분명히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당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채 혼란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느님께서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신 고유의 방식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신비롭고 깊으며 부드럽고 감추어진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언어를 배워 익힌 이들에게만 가장 깊은 신비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살아가면서 혼란을 느끼거나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해 마련하신 계획이 무엇인지 몰라 혼란스럽다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에 얼마나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살펴볼 때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하느님께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언제나 말씀해 오신 방식으로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언어는 무엇일까요? 가장 깊은 차원에서 그것은 주부적 기도의 언어입니다.

물론 기도는 단지 기도문을 외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기도는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맺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가장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입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며 사랑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 초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기도하지 않기에 그 초대를 듣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10장을 비롯하여 요한 복음의 많은 부분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소설처럼 그저 한 번 읽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영혼 안에서 듣고, 깊이 묵상하며, 거듭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다가갈 때 마음의 귀가 열려 하느님의 목소리를 확신 있게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신비로운 방식으로 자신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바로 그것이 좋은 출발점입니다. 시간을 내어 이 복음 말씀에 머무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되새겨 보십시오.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침묵의 기도를 통해 그분의 언어를 배우고, 그분의 거룩한 말씀이 자신을 그분께로 이끌어 주도록 마음을 여십시오.

신비로이 숨어 계신 저의 주님, 주님께서는 밤낮으로 제게 말씀하시며 끊임없이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믿음이 깊어지고 모든 면에서 참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게 도와주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의 하나이심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요한 12:44–45

위에 인용한 대목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라는 서술로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복음사가가 의도적으로 덧붙인 이 표현은 그 말씀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그저 ‘하신’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한층 더 깊이 다가오도록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이 복음 대목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겪으시기 전 한 주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영광스럽게 입성하신 뒤, 그 한 주간 내내 여러 무리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해칠 음모를 꾸몄습니다. 긴장감이 감돌았고, 예수님께서는 갈수록 더 힘차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다가오는 당신의 죽음과 많은 이들의 불신,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당신이 하나이심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간의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당신이 하나이심을 말씀하고 계실 때,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막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신 참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천둥이 울렸다고 생각했고, 다른 이들은 천사가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셨습니다.

이러한 맥락은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믿으면 성부도 믿는다는 사실을 간절히 알려 주고자 하십니다. 성부와 당신께서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한 분이시라는 이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에 관한 가르침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이시라는 이 가르침을 날마다 새롭게 바라보고 거듭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부와 당신께서 하나이심을 바로 나에게 직접,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부와 하나이신 이 신비를 내가 이해하기를 얼마나 깊이 바라시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십시오. 성부와의 관계 안에서 당신께서 누구이신지 내가 깨닫기를 예수님께서 얼마나 바라시는지 마음으로 느껴 보십시오.

기도 안에서 삼위일체를 이해하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뿐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삼위와 일치하여 하느님의 하나이심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초기 교부들은 우리가 ‘신화(神化)’되도록, 곧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고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 안에서 이 신비를 깊이 묵상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오늘은 성부와의 관계 안에서 당신께서 누구이신지 나에게 드러내고자 하시는 예수님 마음속의 열정을 묵상해 보십시오. 하느님에 관한 이 진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여십시오. 그리고 이 계시에 마음을 열면서, 하느님께서 하나를 이루시는 당신의 거룩한 삶 안으로 나를 이끌어 들이고자 하시는 그 뜻도 드러내 주시도록 자신을 내맡기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받은 부르심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바로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이끌어 들이시려고 오셨습니다. 뜨거운 열정과 굳은 확신으로 이를 믿으십시오.

열정 가득하신 저의 주님, 주님께서는 오래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이 영광스러운 진리를 저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주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그 위대한 신비 안으로 저를 이끌어 주시고, 주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저를 부르시는 신비 안으로도 이끌어 주소서. 저는 이 초대를 받아들이며, 주님과 성부와 성령과 더욱 온전히 하나 되기를 기도하나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복된 사람이십니까?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6–17

부활 제4주간인 이번 주에 우리는 최후의 만찬으로 돌아가, 예수님께서 성목요일 저녁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앞으로 몇 주 동안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 스스로에게 던져 볼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을 우리가 ‘알고’ 또 ‘실천하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종의 역할을 맡으시는 예언자적 행동을 보여 주십니다. 흔히 말하듯, 그분의 행동은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행동 앞에서 겸손해졌고, 베드로는 처음에 이를 사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신 이 겸손한 섬김의 행동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음이 분명합니다.

위대함에 대한 세상의 관점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관점과 매우 다릅니다. 세상에서 위대해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을 높이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리려고 애쓰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세속적 위대함을 추구하게 하는 것은 흔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과 모든 이에게 존경받고 싶은 욕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섬길 때에만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시고자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그들과 그들의 선함을 높이 평가하며, 그들을 존중하고 더없이 깊은 사랑과 존경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위대함에 대한 세속적 관점을 완전히 버리시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겸손은 때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것을 알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그들을 섬기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겸손을 이해한다면, 그것을 실천할 때 ‘행복할’ 것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하느님 보시기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겸손은 특히 명예와 명성을 얻으려는 욕망을 정화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하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 내며, 그러한 욕망과 두려움 대신 자신보다도 먼저 다른 이들이 풍성한 복을 받기를 바랄 때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사랑과 겸손만이 신비롭고도 심오한 사랑의 깊이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신 분께서 제자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시고 마치 종처럼 그들을 섬기신 이 겸손한 행동을 묵상해 보십시오.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기꺼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를 앞세울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씨름하고 있는 모든 이기적인 욕망을 없애도록 힘쓰고, 겸손해지는 것을 가로막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겸손이라는 이 선물을 깨닫고 실천하십시오. 그때에야 비로소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겸손하신 저의 주님, 주님께서는 깊은 겸손으로 제자들을 섬기는 길을 택하시어 저희에게 사랑의 완전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덕을 깨닫고 실천하며 살도록 저를 도와주소서. 모든 이기심과 두려움에서 저를 해방하시어, 주님께서 저희 모두를 사랑하신 것처럼 저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마음의 산란함을 이겨 내기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요한 14:1

요한 복음 14–17장에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담화’ 또는 ‘고별 담화’라고 불리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주님께서 붙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하신 일련의 가르침입니다. 이 담화들은 깊이가 있으며 상징적인 표현으로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보호자, 포도나무와 가지들, 세상의 미움에 관하여 말씀하시며, 이 담화들은 예수님의 대사제 기도로 끝을 맺습니다. 이 담화들은 오늘 복음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머지않아 겪게 될 두려움, 곧 마음의 산란함을 아시고 이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먼저 위에 나온 예수님의 첫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이것은 명령입니다. 부드러운 명령이지만, 그래도 분명한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곧 당신께서 붙잡히시고, 거짓 고발을 당하시며, 조롱받고 매 맞고 죽임을 당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곧 겪을 일들로 압도되리라는 것을 아셨기에, 이 기회에 그들이 머지않아 마주할 두려움을 온유하고 사랑 어린 마음으로 꾸짖으셨습니다.

두려움은 여러 가지 원인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처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 경우 두려움은 위험을 더욱 분명히 알아차리게 하여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해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기에서 말씀하신 두려움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비합리적인 결정과 혼란, 심지어 절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온유하게 꾸짖고자 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때때로 무엇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십니까? 많은 사람이 저마다 여러 이유로 불안과 걱정,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과 가슴 깊이 울려 퍼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길은 그 근원에서부터 두려움을 꾸짖어 물리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런 다음 그분의 두 번째 명령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하느님을 향한 믿음은 두려움을 치유하는 약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음성에 이끌립니다. 우리가 마주한 어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가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두려움은 비합리적인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고, 비합리적인 생각은 우리를 점점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빠져들기 쉬운 비합리성을 꿰뚫고, 믿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진리는 명료함과 힘을 줍니다.

오늘, 삶에서 가장 큰 불안과 걱정, 두려움을 안겨 주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믿음으로 부르시며, 그 괴로움들을 온유하면서도 단호하게 꾸짖어 물리치시도록 마음을 여십시오. 하느님을 믿으면 모든 것을 견뎌 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견뎌 내셨습니다. 제자들도 마침내 저마다의 십자가를 견뎌 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힘을 주고자 하십니다. 마음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무엇이든 이겨 낼 수 있도록, 그분께서 말씀하시게 해 드리십시오.

사랑이 넘치시는 저의 목자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 마음도, 제가 삶에서 겪는 어려움도 아십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님을 굳게 믿고 신뢰하며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모든 유혹에 맞설 수 있도록 필요한 용기를 주소서. 제 생각을 맑게 하시고 불안한 제 마음에 평화를 주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하기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나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요한 14:12–14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께서 몸소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도록 부름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 이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명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이를 압니다. 이 진리를 생각하면, 우리를 통하여 그토록 힘 있게 일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더 큰’ 일 가운데 가장 우선하는 것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의 사명은 주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오르시어 교회 위에 성령을 보내 주셨을 때, 성령을 받을 모든 이에게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회개로 이끄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고 싶습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런 꿈을 꿉니다. 이러한 갈망이 우리의 인간 본성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 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된 위대함이 무엇인지 너무나 자주 혼동합니다. 세속적이고 덧없는 위대함을 드러내는 행위로 그 타고난 갈망을 채우려 합니다. 이기적인 야망에서 비롯된 인정과 부, 그 밖의 덧없는 보상을 추구합니다. 이 모든 것을 더할 나위 없이 많이 얻는다 해도, 그 어느 것도 궁극적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노벨 평화상을 받거나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거나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이루면 충만함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이 하느님의 뜻일 때에만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일이 될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십시오. 그 안에서 위대한 일을 하고 싶은 갈망이 보입니까?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 내면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자신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임을 되새기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나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전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이 은총을 청하면 주님께서는 이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에는 겸손과 자기 뜻에 대한 집착을 온전히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자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부께 청하시는 것만을 우리도 성부께 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겸손한 기도에 따르는 보상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 당신의 은총과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완전한 뜻입니다.

오늘은 이 고귀한 소명을 묵상해 보십시오. 먼저 자신의 영혼 안에 있는 위대함에 대한 갈망을 바라보십시오. 그런 다음, 오직 하느님의 뜻만이 자신을 충만하게 해 줄 수 있음을 알고 그 갈망을 하느님의 뜻과 일치시키십시오. 날마다 겸손하게 자신의 뜻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이 선물을 청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 영원한 영광을 드리는 일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이것은 영원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섭리로 이끄시는 주님, 주님의 뜻은 완전하고 영광스럽습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서 저 자신을 낮추도록 도와주시어, 제 삶에 대한 주님의 뜻을 깨닫고 언제나 그 뜻을 선택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저를 통하여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자 하시는 모든 이에게 주님의 구원 은총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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